야당은 얼굴에 핏발을 세우며 고성을 터뜨린다. 때로는 몸싸움도 불사한다. 여당은 야당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채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으로 일관한다. 멀리 의사당밖에서는 농민단체들이 시위를 벌인다. 매년 이맘때면 국회에서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바로 추곡수매를 둘러싼「연례통과의례」이다. 문민시대라는 올해에도 이런 모습은 어김없이 재현될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정부와 민자당이 발표한 수매안에 야당은 즉각 강력한 반대를 표시하고 나섰다. 당정이 밝힌 수매안은 9백만섬 수매에 3%인상. 민주당은 1천2백만섬에 16%인상을 주장하고있다. 좀처럼 좁혀지기 어려운 현격한 차이이다.
야당이 추곡수매에 있는대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물론 추곡에 붙어있는「표」때문이라 할 수 있다. 추곡으로 상징되는 민의를 의식한다고도 볼 수 있다. 사정은 여당도 마찬가지이다. 당정이 합의했기 때문에 수매안에 반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인 찬성도 하지 않는다. 당정협의과정에선 여당의 농촌출신의원들도 야당만큼이나 목소리를 높였다. 17일 민자당당무회의에서 의원들의 불만이 터져나온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곤혹스럽다.우선 한정된 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게 정부측의 당연한 입장이다.양정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결국 추곡수매안의 국회처리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실질적인 농촌문제와는 관계없이 여당과 야당 그리고 정부의 힘겨루기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야당은 민의에 대한 성의표시를 위해 과격한 행동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문민시대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엄연한 정치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70년대 저임금 저곡가가 요구되던 수출드라이브 시절의 추곡수매제도가 2000년대를 바라보는 국회의 발목을 여전히 잡고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연례행사」를 당연히 받아들이기 보다 근본적인 농촌대책을 국회와 정부가 평소부터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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