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움이 넘쳐야 할 만추의 들이 서글프다. 벼농사는 냉해로 흉작, 반대로 배추는 과잉재배로 대풍작, 천재와 인재가 엎치고 덮친 셈이다. 그러다보니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다. 농민은 배추밭에 소를 풀어 먹인다. 값이 뚝 떨어질까봐 정부도 다급했다. 뽑지 않고 놔두면 한포기에 50원씩 보상한다는것이다. 거둬들이기보다는 갈아 엎어버리는게 좋다는 계산이다. 또 한번 수급조절의 실패라는 농정의 자가당착이 그대로 드러났다. 수확의 포기나 폐기는 먹거리를 끔찍이 아끼는 우리의 정서에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구조개선의 진통을 겪는 농촌에 고통을 가중케 하고 있다. 뾰족한 대안도 없지만 꼭 이럴 수 밖에 없나 하는 의문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참담한 현실이다.
거의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우리 농축산업은 수급과 유통과정이 원활하지 못한 탓으로 파동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게다가 농정에 대한 오랜 불신이 쌓이고 쌓여 계획영농은 차질을 빚기가 예사다. 따라서 오늘의 배추파동이 딱 부러지게 누구의 책임이라고 지적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시장원리에 따른 농축산물의 수급조절은 좀체 궤도를 잡지 못한다. 우선 농정당국이 확신을 갖고 영농을 지도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그럴수록 농촌은 역으로 달려간다. 한우파동 돼지파동이 반복되었는가 하면 무파동 양념파동으로 가격은 널 뛰듯 안정을 찾지 못했던게 엄연한 현실이다.
더욱이 고질화한 중간유통과정의 전근대성으로 인해 생산지와 소비지의 가격차가 엄청나다. 밭떼기 같은 유통구조로 인해 싸게 팔리고 비싸게 사먹는 사례가 허다하다. 여기에다 더해 농산물의 저장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풍·흉에 따른 가격조절은 더욱 어렵다. 우리 농정이 파고들고 메워야 할 허점과 공백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것이다. 그럼에도 계획영농은 구호로 그치고 실제는 주먹구구식의 행태가 지금의 모순을 자초한것이나 다름 없다. 예측가능한 농정이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 시장개방의 압력은 전 산업에 걸쳐 거세지고 있으며 특히 농촌과 농산물에 대한 개방의 파고가 날로 높아간다. 우리 농촌은 안팎으로 2중고에 시달리는 중대한 고비에 서 있다. 개방에 대비하려면 내실이 중요하고 그것이 앞서야 한다. 농민이 희망을 잃으면 나라의 기력이 약해지고 떨어진다.
풍작이면 갈아 엎고, 흉작이면 급하게 수입하는 즉흥적인 대응이 계속되면 희망도 사라지고 생존의 터전이 망가진다. 농정이 신뢰를 회복하고 농민에게 새로운 정보와 소득원을 찾아 주는게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돌아가는 농촌」은 한낱 꿈의 공약으로 끝나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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