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초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경련회장단의 지방순회 간담회시 뜻밖의 낭보가 있었다. 마산·창원지역의 중소수출업체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는 일본에서의 수입오퍼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것이었다. 그러자 이자리에 참석했던 한 대기업대표도 일본의 해운회사가 사상 처음으로 신조선 건조를 자기회사에 의뢰해왔다고 실토했다. 엔고의 위력을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높은 금리, 많은 규제등 불만이 홍수를 이룬 이 간담회에서 이 이야기는 신선한 청량제였다. 일본에 가도 같은 얘기다. 일경비즈니스의 최근호에는 가지마건설이 처음으로 한국산 동재를 사용해 세운 체육관의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다. 오사카에는 고급호텔인「하얏트 리젠시 오사카」의 건설에 한국산 동재가 사용되고 있다. 한국산이 일제보다 15%나 싸졌기 때문에 건축비를 4천8백만엔이나 절약할 수 있었다는것이다. 이번의 엔고는 과거와는 달리 환율만 변화시키는것이 아니라 일본업계의 한일경협 의욕을 높이고 있다.
지난 50년대 미쓰비시상사는 건축용 판유리를 미국에서 수입했었다. 그러나 당시 통산부의 행정지도로 판유리수입에서 손을 떼고 아사히등 3개의 국내메이커에 고스란히 판매망을 넘겨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통산부의 압력으로 미국에서 판유리수입을 재개했다. 한국산 철동재의 대일수출이 가능해진것도 종전까지 일본정부가 취해온 「공장인정제도」가 바뀌면서부터였다.
엔고는 단순히 일본의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증가만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려움에 처한 일본의 경쟁력을 인접국이 강화시켜 준다고 해야 보다 정확할것이다. 물론 한국도 수출 증가, 기술수준제고등 좋은 효과가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격인 이러한 보완관계는 제3국시장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향후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하는 중국이나 동남아에서는 그 가능성이 더욱 크다. 한일경협은 이렇듯 서로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있다. 이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왜 여태까지 백안시되어 왔는가. 여기에는 몇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첫째는 과거사의 문제요 둘째는 경제논리에 앞선 감정의 대립이나 비경제논리의 경제논리 압도였다. 물론 우리의 대일자세도 조금은 문제였고 쩨쩨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일본의 대한인식도 장애였다.
이달 초 경주에서 개최된 한일정상회담은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기본인식에서부터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내외 환경 또한 변화를 가능케하는 유리한 방향으로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 추세를 경제협력 확대로 귀착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상을 토대로 일본기업의 엔고 극복노력에 적극적 대응이 있어야 한다.
우리 경제의 당면과제는 역시 기술개발과 이를 위한 투자재원의 확보다. 국제화전략이 새삼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일본기업은 「달러당 90엔대」의 대해일까지 예상하고 생산기지의 해외이전, 부품의 해외조달을 크게 늘리고 있다. 특히 80년대 후반의 엔고때는 노동집약적 상품만이 다른 나라로 이전됐지만 이번에는 기술집약산업마저 해외에 넘겨야 할 상황이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기계 자동차 전자등 중화학제품의 대한구매급증은 이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현대와 후지쓰간에 이루어진 반도체개발 공조체제는 두나라 사이에 기술분업까지 가능하다는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크라이슬러를 빅3에서 밀어낸 「어코드」차를 대우에서 생산하자는 혼다의 제의도 같은 맥락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한일 양국간 경협, 그리고 제3국시장에의 공동진출은 한국으로서는 산업의 구조조정에 크게 도움이 될것이다. 또 일본으로서도 취약한 경쟁력을 보강시키고 막대한 흑자를 국제사회에 환류시키는데 적지않은 기여를 할 수있다. 지난달 전경련초청으로 서울에 온 경단련회장단도 대한경협에 적극적이고 중국에서의 구체적 프로젝트까지 거명하며 한국의 참여를 요청한것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어느 누구도 독존할 수 없게끔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국제경제사회에서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가까운 경제적 유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서로의 마음을 열고 실리를 추구하되 결코 호혜를 잊지 않는 바람직한 경제협력의 실천에 양국 경제계와 국민의 노력을 모아 나가야 한다.<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