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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지탄 「선열의 묘소」/최성욱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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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지탄 「선열의 묘소」/최성욱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3.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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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의 염원을 안은채 이역 만주땅에 묻힌 독립유공자 선열의 묘소를 찾아 중국 길림성일대를 돌면서 만시지탄을 넘어 절절한 죄책감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묘소실태조사단은 지난달말부터 보름간 길림성 화농현 연길시 길림시등을 답사, 선열 열분의 묘소를 확인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삭풍속에 눈덮인 산야를 오르내리면서 조사단의 가슴은 갈수록 죄스러움으로 옥죄어졌다. 기차와 버스를 몇번씩 바꿔 타고 찾아간 선열의 묘터는 몇해전 밭이나 과수원으로 변해 자취조차 찾을 수 없는 곳이 많았다.어렵게 찾은 몇몇 묘소들도 흔한 비석은커녕 봉분조차 제대로 없었다.

 선열들이 목숨과 바꾼 나라를 되찾은지 50년이 가까워 오는 사이 그들은 그곳에 그렇게 버려져 있었다.

 현지 조선족동포들은 눈물로 조사단을 맞았다. 전해오는 얘기들의 기억을 더듬어 묘소를 찾는 데 앞장 섰고 중국인들까지 수소문해가며 험한 산을 몇차례씩 오르내리는 길안내를 마다 하지 않았다. 묘소를 찾지 못하거나 확인이 안되면 자신들의 탓인양 마냥 송구스러워 했다.

 결국 김윤승선생(정동중학교장)등 열다섯분의 묘소는 대략적인 소재는 찾았으나 봉분이 유실되거나 비석등 증명할 소재가 없어 재확인대상으로 남겨 둔채 그냥 되돌아 서야 했다.

 확인된 선열의 묘소앞에 고량주 한잔을 따라 올리고 동포들과 함께 엎드리면서 조사단 일행은 그들의 눈길이 부끄러웠다. 이들은 독립투사의 후손으로 조국도 찾지 못한채 이국에서 고달픈 생을 이어 왔으나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묘소를 확인해 줄 수 있는 현지인이 1년전 세상을 떴다는 말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은 일행속에서 나온 탄식이다.

 탄식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묘소실태조사단의 경비도 보훈처에 별도 예산이 없어 다른 해외출장예산을 끌어다 썼다는 뒷얘기가 못내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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