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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US VIVENDI(김성우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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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US VIVENDI(김성우 문화칼럼)

입력
1993.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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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요즘 무슨 재미로 사십니까? 이런 당돌한 물음에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히 많지 않은 멍청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다. 이 실답증이 우리 사회를 숨막히게 한다. 아무리 물어도 아는 사람이 있을것 같지않은 무지의 황야. 자기가 무슨 재미로 사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막막한 세상이다. 이것이 생기도 향기도 없는 우리사회의 쓸쓸한 풍경이다. 과소비바람이 갑자기 분다고 한다. 백화점 세일기간에는 도심의 교통이 온통 마비되고 문닫은줄 알았던 룸살롱들이 호황을 이루고 여기저기서 돈쓰는 소리가 요란하다. 돈을 버릴데가 없어서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 같다. 사정한파가 한바람 지나가서 구습이 소생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과소비라기보다는 이상소비다.

 왜 호주머니를 뒤집어 그속에 든 돈을 다 털어버리고 싶어 하는가. 어느새 우리사회에서는 가난은 미덕이요, 치부는 악덕이라는 풍조가 생겨났다. 돈을 많이 가졌다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기는 커녕 지탄의 대상이 된다. 돈은 이제 어떤 힘의 상징도 아니요 오히려 패가의 애물이다. 돈을 애써 벌었자 자식에게 쉽게 물려줄 수도 없고 돈버느라고 고생한 것만큼 버젓이 차려놓고 즐기고 싶어도 주위의 눈총이 따갑다. 쥐고 있자니 들추어질 과거가 불안하다. 많은 돈이 있어도 숨길데도 없고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 아무나 주워가라고 돈다발을 풀어서 바람에 날리고 싶은 심리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돈을 버는 재미로 살았다. 돈을 번다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다. 무작정 돈을 모아놓고 보자는 것이 생활의 동기였다. 그것이 인생의 지고의 가치이기도 했다. 그 배금주의가 사회를 까칠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에 활력을 주는 동인일수도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그 지표를 잃었다. 돈이 무의미해졌다. 돈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인생을 지탱했던 기력이 빠져 폭삭 주저앉아버린다. 무엇때문에 살아야하는지, 가치의 혼돈이 생긴다. 생의 중심을 잃고 모두들 방황한다. 이상소비같은 사회 일탈현상은 허탈감에서 오는 것이다. 배금주의를 대체할 사상이 절실하다. 실의에서 구원될 새로운 종교를 갈구한다. 돈이 무의미하다면 무엇이 의미있는 것인가.

 우리들의 삶은 사상누각이었다. 일진의 바람에 돈의 가치를 날리고 나니 텅 비어버린다. 기초가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뿌리없는 나무요 그냥 맨 땅위에 세워진 기둥일 뿐인 생활이었다. 모든것이 쓸려가도 자신의 존재를 튼튼히 지킬 생활문화의 근간이 있었어야 옳았다. 그 바탕위의 생활이었어야 했다.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 생활방식을 말한다. 우리는 지금 모두스 비벤디를 바꾸어야할 때다. 이제까지는 도금인생이었다. 실내를 온통 황금색으로만 장식하며 살아왔다. 빛나는 것이 모두 금이 아니듯이 금빛이 모두 귀금속의 색이 아니게 되었다. 도배지를 새로 바르듯이 생활의 컬러를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은 즐거움을 위해 산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을때 이 질문속에는 사람이 재미, 곧 즐거움을 위해 산다는 전제가 들어있다. 어디서 즐거움을 찾을 것이냐가 문제다. 여태까지는 이 즐거움을 돈에서 찾았다. 돈이 모든 즐거움의 도구라고만 생각했다. 그것이 착각이었다. 무릇 모든 즐거움 가운데 가장 큰 즐거움은 가장 아름다운 것에서 나온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의 제1막 3장에서 로잘린드는 『미는 금보다 도둑을 자극한다』고 말한다. 그런 도심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어서 누구에게나 미는 금보다 유혹적이다. 미만한 즐거움은 없다. 미는 모든 이해를 떠난 쾌감을 준다. 인생은 스스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리고 크든 작든 저마다 미를 추구하는 과정이다. 사람이란 궁극적으로는 미를 위해 산다고 할 수 있다. 가을산의 단풍이나 장엄한 일출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즐겁게 살지 못한다. 미야말로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했던 영국의 산문가 페이터가 어릴때 모든 식물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빨간색이라고 생각했던 산사나무의 빨간색, 그런 미적감동은 저마다 있다. 미는 자연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의 극치는 예술이다. 예술속에 인생의 진미가 있다. 예술에의 근접이 방황하는 생활을 구제해줄 것이다. 시나 소설을 즐겨읽고 연극구경이나 음악회에 자주 가고 간혹 혼자 그림도 그려보고 할때 당신은 잃어버린 재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미는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돈의 다과에 상관없다. 다만 정신이 아름답지 않으면 진정한 미를 볼 수 없다. 참된 아름다움을 알자면 먼저 정신속의 부정한 것을 일소해야 한다. 황금빛밖에 아름다운 것이 없던 색맹의 연대가 가고있다. 돈보다 미에 지고의 가치를 두어야할 새로운 생활방식의 시대가 오고 있다.【본사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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