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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때문에” 본업무 뒷전(공직사회 이제 뛰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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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때문에” 본업무 뒷전(공직사회 이제 뛰자:3)

입력
1993.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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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위주·중복감사 불만/민원처리 지연·중단까지/“다치기싫다” 소신·재량권 발휘에도 무관심 『새정부 출범이후 열달이 못돼 직무감찰등까지 합쳐 감사만 10여차례나 받았습니다. 솔직히 감사준비하랴 받으랴 감사에 쏟은 시간이 본업무를 하는 시간보다 더 많았습니다. 민원처리가 늦다고 국민들은 아우성치지만 감사에 내목이 걸렸는데 어떡합니까』

 서울시내 모구청 건축과장의 하소연이다.

 새정부들어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일선공무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는『감사때문에 일 못하겠다』는 것이다.

 공직사회에 만연됐던 부패와 적당주의를 일소하기 위해 엄정한 감사가 필수적인것은 두말할 나위없다. 공직사회를 움직이게 하는데 감사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공무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과중한 감사부담을 호소한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흔히 가지치기로 불리는 감사의 목적은 행정이 잘 굴러가도록 하는것입니다. 가지치기도 중복되고 잘못되면 오히려 농사를 그르칩니다. 행정의 가지치기라 할 수 있는 감사가 요즘처럼 지나치게 중복되고 과다하면 도리어 본말이 전도될 수도 있습니다』

 중앙부처 한 국장의 진단이다. 

 일선공무원들이 털어놓는 감사는 종류도 수십가지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감사원감사는 기본이고 2년마다 하는 회계감사와 정기감사, 내무부의 표본감사, 시도자체감사, 시군구의회감사, 청와대와 총리실 내무부에서 비정기적으로 하는 직무감찰, 명절이나 휴가철의 복무감사, 투서등에 의한 비리색출감사, 총무처등 중앙부처에서 업무실태를 점검하는 행정감사등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지도방문형 감사등은 빼더라도 정부정책 이행여부를 점검하는 행정감사를 포함해 지자체가 받는 감사는 월10∼12회정도입니다. 여기에 감사자료수집을 위한 사전방문등까지 포함한다면 지자체에 감사부담이 과중한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변혁기에 다소 감사활동이 강화되는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정부의 행정감사업무를 총괄하는 총무처 문동후복무감사관의 말이다.

 정부는 불요불급한 감사, 중복감사, 대상기관의 편중, 과다한 감사인력 파견, 전시효과위주 감사등의 폐단을 줄이고 감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아직은 말치레에 그치고 있다는게 일선 행정기관 공무원들의 얘기다.

 『지난 6월 청량리경찰서에 기관종합감사를 나갔는데 감사가 시작되기 보름전부터 민원처리가 거의 중단됐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경찰서에서 민원인들에게 「골치아프니 감사가 끝난뒤에 보자」고 민원처리를 몽땅 미뤘다는 것입니다』이 경찰서에 감사를 갔던 감사원의 한 감사관이 전한 말이다. 대부분의 행정관서가 감사만 닥치면 일단 넘기고 보자는 식이어서 본래 업무가 제대로 될리가 없다고 인정했다.

 『일선에서 일하다 보면 규정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사실 법규야 최소한에 그치고 공무원의 재량권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 아닙니까. 그러나 최근에는 공무원들이 재량권을 발휘하지 않습니다.법규를 조금만 확대해석해 소신껏 일하다가는 다치기 십상이죠.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일을 처리하다 보면 모함과 투서도 많이 받게 되고 자연히 감사에 걸려들 소지도 많아집니다』

 지방행정관리를 지낸 총리실의 한 이사관은 업무처리의 적법성을 따지는 감사에서 벗어나 업무처리 동기와 결과를 중시하는 합목적성을 따지는 감사로 방식이 바뀌어야 공무원이 소신껏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선공무원들의 감사불만은 크게 몇가지로 요약된다. 감사가 비리적발 및 징계위주로 실시된다는것이 첫째 불만이다. 능률향상이나 제도개선이란 본래의 목적은 우선순위에서 뒤처진것 같다는게 공통된 지적이다. 여러 기관들의 중복감사에다 규정이행여부를 엄격히 캐는 적법성 감사위주가 주된것이다.

 감사원에서 이미 감사를 끝낸것을 다른기관에서 다시 감사하는것도 문제다. 『국정감사때 감사원감사 결과를 반복해 따지는 게 다반사』라는 서울시공무원의 얘기는 중복감사로 인한 일선행정기관의 애로를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중복감사의 근절, 사소한 확인 점검을 위한 현지지도방문등의 최소화, 비리위주보다는 개선책마련위주의 감사,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를 적극 발굴 격려하는 감사를 일선공무원들은 바라고 있다. 그래야 공무원들이 열심히 뛸 수 있다는것이다.【이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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