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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지도/「어린이 작문선수」만들기 없애자(초등교육을 살리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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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지도/「어린이 작문선수」만들기 없애자(초등교육을 살리자:5)

입력
1993.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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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표현형식 얽매기보다 자유롭게/생활얘기 진솔히 쓰는능력 길러줘야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는 글짓기는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귀찮은 일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아이들이 즐기고 배우는 문화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도회지 아파트촌의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가 파하면 학원에 간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대개는 TV앞에 앉는다. 요즘 TV가 주는 즐거움은 고작 만화영화류가 어린이프로의 전부이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다. 더욱더 감각적인 말과 현란한 의상·동작으로 화면을 꾸미는 방송기술이 꼬마시청자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다. 게다가 점점 시장을 넓혀가는 비디오산업과 전자오락은 아이들을 TV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있다. 보고 흉내내는 문화가 읽고 쓰는 문화를 밀어내고 있어 아이들은 글쓰기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YMCA 시청자운동본부가 올해 여름방학동안 서울 전지역의 국민학생 1천3백98명을 대상으로 비디오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아이들은 평균 6.53편의 비디오 테이프를 본것으로 나타났다. 89년 같은 기간 조사의 5.10편보다 1.43편이 늘어났다. 이중에서 10편이상 시청한 아이들이 22.3%인 3백12명이나 됐다. 89년 14.1%였던 수치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것이다. 특별한 재미거리가 없을 땐 책을 뒤적이게 되고 그러다 글도 써보게 되던 과거와 달리 책, 글과 접할 수 있는 주변환경이 완전히 바뀌고 있는것이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것이 온통 「보는 문화」의 탓만은 아닐것이다. 우리 국어교육이 잘못된 「글짓기」를 가르쳐왔다는 비판은 교육내적인 문제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외면하도록 했다는 자성에서 출발한다.「글짓기」나 「작문」「문예」가 아니라 「글쓰기」교육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주영사무국장(38)은 『표현의 형식과 기교에 치우쳐 꼬마문인을 육성하는 방식으로 실시돼온 글짓기교육이 감수성이 예민하고 표현력 풍부한 아이들을 글쓰기에서 소외시켜 왔다』고 지적한다.

 이사무국장은 『글짓는 재주가 있는 소수의 학생을 문예교사가 선발해 따로 가르치는 방식, 대회나 행사에 참가해 실적을 올리기 위해 글짓기선수를 육성하는 교육방식이 아이들의 글쓰기 풍토를 해쳐왔다』고 이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나머지 대다수의 아이들이 글쓰기문화에서 멀어져 갔고 재능있는 아이들마저 「구름은 구름은 바아보」,「거울은 요술쟁이인가봐」,「웃음빛이 짙어가네 우리마을 새마을」식의 아기흉내나 상투적이고 판에 박힌 어른들의 구미에 맞는 글을 억지로 지어내다가 자신의 잠재적 표현능력을 변질시키게 됐다는것이다. 심지어는 교사나 부모가 대신 써주어 상을 받게하는 일까지 생기게 만들었다.

 서울 강동구 길동 신명국교 문예담당 김익승교사(39)는 『글재주 있는 소수의 아이들을 위한 글짓기교육은 모범글이라는 규격화된 틀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었다』며 『아이들은 효행이니 질서니 하는 도덕교과서같은 교훈적 내용이나 반공 경제발전등 어른들의 경직된 논리에 맞춰 글을 써야만 좋은 줄 알았다』고 지적한다. 요즘에는 무슨 주간이다 무슨 행사다 해서 백일장에 참가해 글짓도록 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고 강제적이지도 않지만 아직도 글짓기대회에 참가해 달라는 공문이 한달 평균 4∼5부씩은 온다고 한다.

 87년의 제5차 교육과정 개정에 의해 국어교과서는「읽기」「말하기·듣기」「쓰기」로 나뉘어졌다. 독해중심의 국어교과서를 개개의 기능학습중심으로 바꾼것이다. 과정마다 학습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어 교사들이 가르치는데 훨씬 수월해졌고 어느 한쪽에 치우쳐 가르칠 위험도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주6시간인 국민학교 국어수업중 2시간으로 쓰기를 가르치기에는 책의 분량이 너무 많다. 서울 양천구 목동 신서국교 유인성교사(45)는 『교과서에 나온대로 읽고 쓰게 하면서 단원을 넘어가기는 쉬울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주어진 소재를 가지고 스스로 생각해서 다르게 표현하거나 경험에 비추어 새로운 글을 쓰게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특히 과밀학급이라는 우리교육의 근원적인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실있게 글쓰기를 지도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또 교사용 지도서가 교육환경이나 교사의 교육방법을 고려하지 않은채 3권의 국어교과서를 횡적으로 연결해 지도하도록 규격화한것이 잘못이라는 지적도 많다. 서울시교육청 초등장학과 장충남장학사(48)도 『5차교육과정 개정때 바뀐 현재의 교과서가 교사의 교육방법을 단계별로 나누어 너무 딱딱하게 다루었다는 일선교사들의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글쓰기교육의 여건이 나쁠수록 올바른 글쓰기를 위한 교사의 지도력과 열의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사들은 제대로 된 문장교육을 받지 못한채 교단에 선다.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강경호교수(45)는『문장론은 과거부터 교대의 교육과정에 있었지만 스스로 글을 지어보고 아이들이 쓴 글을 평가하는 작문수업은 최근에야 생겼다』며 『서울교대도 올해들어 처음으로 작문수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교수는 또 『직접 글을 쓰거나 아이들의 글을 읽고 지도하는것을 어려운 일이 아닌 줄 알고 있던 학생들에게 막상 강의를 하면서 작문연습이나 어린이글지도를 시켜보았더니 교대생들부터가 논리적 구성은 그만두고 제대로 된 문장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소수의 아동문학가를 양성하거나 한 권의 책을 읽고 국어수업을 끝내는 시절이 아닌 만큼 올바른 문장력과 글쓰기지도력을 갖춘 교사들을 양성하는 일이 중요한 문제로 닥친 셈이다. 

 교육환경 개선이나 교과서 개정등 장기적 안목으로 올바른 글쓰기여건을 만들어 나가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우선 해야 할 선결과제는 무엇일까. 강교수는 『TV앞에서 수동적으로 쉽게 정보를 받아들이려 하는 요즘 어린이들에게 글쓰기의 재미부터 알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쉽게 글을 쓸 수 있도록 교사가 격의없이 대화하고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익승교사도 『많은 아이들이 책에 나오거나 상을 받은 글만 진짜글이라고 생각하고있다』며 『자신이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을 진솔하게 써보면서 그 속에서 가치있는 글을 발견하도록 지도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글쓰기가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여러 수단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유인성교사는 『일기를 통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보려는 교사들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글쓰기교육이 어린이문학가를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게 아니라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있는 일임을 명심하고 글을 매개로 아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학급문집/한학기 한권씩 일기모아 출간 글쓰기 도움

 학교·학급단위로 문집을 펴내는 일은 아이들의 글쓰기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문집을 만들면서 글을 여러번 고쳐 써 봄으로써 자연스럽게 훈련이 되고 자신의 글이 어엿한 책으로 묶어져 나왔을 때 느끼게 되는 성취감도 크다.

 하지만 형편이 좀 나은 서울지역도 여러 제약때문에 지역교육청별로 1∼2개교가 학교문집을 내고 있는 정도이다. 가장 어려운 점은 문집발간비용을 마련하는 일이다. 서울성자국교나 중화국교의 경우 문집제작에 든 비용은 5백여만원. 그나마 학교단위로 받아보는 어린이신문의 구독료중 배달료가 들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신문사에서 되돌려 받아 2년여동안 모은 돈이다. 다음호를 내기 위해서는 또 2년을 기다려야 한다. 

 대부분의 학교가 문집을 만들려 하고 있고 문집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도 좋지만 비용때문에 선뜻 일을 벌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학교문집이라는 형식의 글쓰기지도에는 문제점도 있다. 큰 규모의 문집 만들기는 아이들의 글쓰기를 남에게 보이기식으로 흐르게 할 우려가 있으며 글을 통한 생활교육보다는 문집을 위한 글쓰기교육이 될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교문집은 아이들의 글에 사진까지 함께 실어 문집이라기보다 앨범같은 인상을 준다. 또 어린이들의 창작이라고는 볼 수 없는 수수께끼나 성인유머에 가까운 개그가 들어 있으며 문집제작을 업자에게 맡기는 바람에 학교이름만 다를뿐 체제와 형식이 엇비슷하다. 

 학급단위로 문집을 만드는 열성교사들도 있다. 서울지역글쓰기교육연구회 소속교사 30여명은 학급별로 한 학기에 1권씩 문집을 내고 있다. 교사가 아이들의 일기를 읽어주며 매일 글쓰기지도를 하고 그 중에서 잘된 글을 골라 낱장의 종이에 옮겨 적도록 한뒤 계속 모아 두었다가 학기말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잡무에 시달리는 일선교사들이 매일 아이들의 글을 꼼꼼히 평가하고 지도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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