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조각 구름이 일어났다 사라지듯 열반의 길로 『큰 스님 불 들어 갑니다』
10일 하오2시30분 연화대 다비장에서 열린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철 큰스님의 다비식.
스님의 법구는 이 말과 함께 활활 타 올랐다.
법보종찰 해인사 가야산을 구름처럼 뒤덮은 추모인파는 그 순간 한없는 슬픔에 잠겼다. 큰 스님의 가심을 새삼 절감하는 애통의 눈물이 조객들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철모르는 어린이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가야산은 혼을 쏟아버린 것처럼 일순간 텅 빈 듯 했다.
하늘에서는 비마저 내려 슬픔을 더해주었다.
뭇 중생에게는 성철스님의 열반이 더없는 슬픔일 것이다. 그러나 그 슬픔을 한꺼풀 벗겨내면 크나큰 환희심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육신의 헌옷을 벗어내고 적멸의 세계에서 법신(나고 죽음에서 벗어난 진리의 몸)으로 큰 스님이 다시 태어났다는 믿음 때문이다.
다비식은 생사화합을 상징하는 의식이다.
수행인은 누구나 자기견성을 통해 적멸에 도달하려는 노력으로 일관된 삶을 산다.
성철스님의 수행자로서의 삶 역시 이러한 노력으로 점철돼 있다.
적멸은 견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이상이다. 그래서 적멸은 환희심을 불러일으킨다.
불가에서는 인간의 육신이 지수화풍의 네가지 기운으로 구성돼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육신을 사대각리라 부른다. 성철 스님은 다비식을 통해 각 각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근원으로 돌아갔고 신령스런 법신만 남았다.
거추장스러웠던 육신을 벗어던진 스님의 법신은 한없이 자유롭다.
수행인은 법신의 자유로움을 얻기위해 육신을 홀대한다. 육신에는 적멸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법신에는 고금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종이 없고 생사거래가 없다. 성철스님은 생사고해를 건너서 열반의 저 언덕에 도달했다.
스님의 육신을 집어 삼킨채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화염은 잿빛으로 물든 산하대지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산빛 물빛이 참되고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가득차는듯 하다.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성철스님은 한조각의 구름이 일어났다 사라지듯이 그처럼 허허롭게 열반의 길에 들었다.<글·이기창기자 사진·이기룡기자>글·이기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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