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공전. 많이 들어본 얘기다.과거 국회에선 더욱 그랬다. 모든 것이 달라지고 개혁된다는 문민시대에도 이 말은 여전히 건재하다. 심야회담. 공전과 함께 국회에선 귀에 익은 말이다.뭔가 잘 안풀릴 땐 여야가 밤늦게까지 머리를 맞대고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사전에 막후협상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놓고 모양갖추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공전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주는 묘책의 하나다.
그러나 지난 8일 밤의 여야총무회담은 이런 원론에 비춰볼 때 졸작중의 졸작이었다. 하오의 회담에 이어 밤11시께 국회에서 다시 열린 이날 심야회담은 전혀 진전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45분이나 걸린 시간이 무색할 정도였다.
물론 이날 심야회담은 민주당측의 사정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하오 8시반부터 민주당의 최종입장을 결정할 최고위원회의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예에 비춰볼 때 야당의 입장을 결정하는 회의에 뒤이은 심야 여야접촉은 상황의 진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야 모두 여론의 압력에 부담을 느끼게되는 만큼 타결을 서두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회담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민주당은 김대중씨납치사건조사등 일부 주장을 양보했지만 개혁입법과 예산안처리를 연계해 여전히 강공을 구사했다. 민자당은 총무차원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며 답변을 피했다. 민자당은 날이 바뀐 9일상오에서야「연계불가」라는 방침을 뒤늦게 확인했다.
결국 심야회담이라는 모양은 좋았지만 기대만큼 실망만 안겨준 셈이었다.어떤 면에서 이날의 심야총무회담은 요즘의 정치상황을 극명하게 상징하는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여당의 개혁독주에 제몫을 찾아보려는 야당의 좌충우돌과 외견과는 달리 실권이 많지않은 여당의 무기력이「정치부재」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다.
국회는 있지만 정치는 없다는 비판이 점차 고개를 들고있다. 공전도 있고 심야회담도 있지만「협상의 미학」이 없다면 이같은 비판은 정치권을 더욱 괴롭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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