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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암울한 식민지 상황 그려/염상섭 「만세전」(다시보고싶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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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암울한 식민지 상황 그려/염상섭 「만세전」(다시보고싶은책)

입력
1993.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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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 등 조선사람들 질식된 삶 생생/창작과정서 삭제 등 수난 많이 겪어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1924)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쓰여진 우리 소설중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검열과 삭제등 창작과정에 있어서 수난을 많이 겪은 이 작품은 제목이 이미 암시하고 있듯이 1919년의 3·1운동 직전의 식민지 상황의 눌린 사회적 현실과 조선사람들의 질식된 삶의 상황성을 제시하고 있다.

 1인칭 서술상황으로 제시되는 이 작품은 일본 동경에 유학중인 주인공겸 서술자가 조혼한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을 서두르는 데서 비롯하여 귀향과정을 거쳐서 아내가 끝내 죽게되자 다시 서울을 떠나게 되기 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서사공간이 일본과 조선이라는 두개의 이질적인 공간을 대극으로 한 가운데 여행―기차 항해 보행―이라는 공간내에서의 이동에 중요한 기능과 의미를 부여하고있다. 일반적으로 여행의 생산성이란 경험 및 교육과 관련을 갖고 있다고 하겠는데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여행의 이런 의의를 가장 많이, 그리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위독한 환자는 처음부터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라 여행을 유발하는 하나의 동기적 빌미에 불과하다. 주인공은 죽음의 환자를 향해서 가장 급행의 수단으로 근접해 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동경―고베―시모노세키―부산―김천―대전―서울로 이어지는 공간연계에서 최대한으로 지체하고 늑장을 부리고있다. 이렇게 공간의 전후 좌우를 거듭 살피게 하고 다발적인 공간이행을 하게 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하여금 여러곳에 지체해서 현실을 보게 하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사실 주인공은 이 지체와 관찰의 여행을 통해서 조선인에 대한 검문 검색 일본상인들의 조선인 노동자사냥, 조선에 깊이 침투되어 있는 일본상권, 소학교 교사가 칼을 차고 교단에 서는 무단적 교육제도, 조선사람들의 굴종등 식민지 사회의 모든 현실을 역연하게 경험하고 관찰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주인공은 조선의 질식된 상황을 지각하게 되며 그는 바로 이런 조선의 삶이 죽음이 그득한 집단매장지 「공동묘지」와 같은것이라는 인지에 도달하게 되는것이다. 20년대 우리소설에서 죽음의 의식이 두드러졌던것이 사실이지만 이 작품만큼 억눌리고 닫혀진 식민지 상황의 질식된 사회적 총체성을 「무덤」으로 표상화시킨 작품은 없을것이다. 이런 질식의 상황을 비로소 지각하게 된다는 의의외에도 또하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것은 이런 현실로부터 멀리 원접적인 거리에 있음으로써 중간의식 내지는 무관심 지각의 마비상태에 있던 주인공이 근접되면서부터 조선인으로서의 아이덴터티로 복귀하게끔, 마침내 의식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죽음의 동심원만이 겹쳐있는 그 가장 내부핵심의 죽음­아내의 죽음­이 있은 다음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질식상태로부터 탈출을 계획한다. 이 부분을 자세히 검토해 읽어보면 「신생의 서광」이라는 「빛과 씨」(종자)의 이미지가 내재되어 있다. 이는 질식과 죽음과 어둠을 초극하는 삶과 빛에의 비전이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지각의 투철함은 물론 비전의 함축을 보게 되는것이다.<이재선·서강대문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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