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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단절 이어가기/극단 아리랑의 「아리랑2」/김윤철(연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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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단절 이어가기/극단 아리랑의 「아리랑2」/김윤철(연극평)

입력
1993.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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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한국연극계에 배우· 연출가등 현장예술가들이 희곡쓰기를 겸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났다. 연출가로는 김정옥 오태석 김상렬 이상우 이윤택 김광림 기국서등이, 배우로는 김명곤이 활발하게 극작활동을 겸하고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문학성의 감소를 우려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연극에서는 문학성보다 연극성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극단 「아리랑」이 혜화동의 예술극장한마당에서 15일까지 공연하고있는 「아리랑2」는 잘못된 과거의 청산문제를 끈질기게 다루어온 김명곤의 원작희곡을 권호웅이 새로이 각색·연출한 극이다.  극은 1993년의 감독(고동업)이 1926년의 나운규(정진영)를 만나 함께 영화「아리랑」을 만들어가는 메타연극적 구조를 띤다. 고동업이 이 개혁시대가 안고 있는 역사의 막힘을 뚫기 위해 오늘의 예술가가, 민족이 새로 넘어야할 아리랑 고개의 의미를 물으려고 나운규를 찾아 과거여행을 떠난다. 얼핏 과거에서 교훈을 찾자는 상식적인 주제를 떠올리겠지만 실은 훨씬 복잡하다. 즉 시대의 고뇌를 온몸으로 짊어지기를 원하는 두예술가들의 상호이해와 비판이 영화를 만드는 작업과정에서 진지하게 중첩되고 있는것이다. 오늘의 냉철한 이성주의는 어제의 감상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하고 또 어제의 순수주의는 오늘의 불투명한 역사적 가치판단을 나무란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처리가 인상적이다. 나운규는 일제의 앞잡이 오주사(고동업)가 영희(방은미)를 겁탈하려다가 그녀의 실성한 오빠(정진영)에게 낫으로 찍혀 죽게 만들어 민족적배반사를 단죄한다. 여기에 고동업감독이 이견을 제시한다. 오주사를 죽임으로써 일제로 향해야할 민족의 분노가 오도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일제이후 오주사의 후예들이 여전히 기득권층으로 남아있음이 엄연한 현실일진대 그들을 죽이는것은 역사의 왜곡이라는것이다. 고동업의 제안으로 장면이 수정되는데 이번에는 오빠의 살인을 막으려다 영희가 대신 낫에 찍혀 죽는다. 그녀의 희생으로 오빠는 정신을 되찾게 되고 그녀는 오빠에게 아리랑고개를 넘어가 독립운동을 하라는 권유를 남긴다.

 극의 겉구조가 약속하는바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 시각차이가 피상적으로만 부각된것, 황국신민대회같은 장면의 패러디가 지나치게 경박하여 주제의식을 흐린것, 나운규의 「아리랑」만들기에 무게가 편중되어서 시의성이 약화된것등은 글쓰기의 문제점이다. 과거로의 환상여행에서 돌아온 고동업의 의무장면(제기한 문제를 마무리하는 장면)도 너무 약했다. 고동업 박남희 방은미 정진영 박길수 손영호등 아리랑의 배우들로부터 앙상블을 도출해낸 권호웅의 연출이 주목되었고 류승우의 무대디자인은 열악한 극장환경을 알뜰하게 활용했다.<세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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