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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들 해탈모습 “갖가지”/성철종정 좌탈로 본역대 일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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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들 해탈모습 “갖가지”/성철종정 좌탈로 본역대 일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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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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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효봉·경봉 가부좌 자세로/혜월은 솔가지 잡고 서서 입적/당나라 은봉선사는 물구나무 선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철큰스님이 4일 상오 선가의 전통적인 좌탈의 자세로 열반하면서 선사들의 해탈 과정과 의미가 새삼 세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불가에서는 죽음을 입적· 해탈· 적멸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용어들은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법신(나고 죽음이 없는 진리의 몸)의 자유를 얻었다는 의미이다. 즉 죽음을 죽음으로 보지 않고 법신의 새로운 탄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을 전한이래 좌탈립망은 수행과 깨침의 결정임을 상징하는 가장 극적인 최후로 알려져 왔다. 부처의 해탈의 순간은 이와는 다르다. 부처의 10대제자 중 한명인 아난존자가 부처의 열반뒤에 나타나 관앞에서 통곡하자 이를 가엾이 여긴 부처는 관속에서 두 다리를 들어 보였는데 이를 「각시쌍부」라고 한다. 선사들의 수행의 깊이를 입증해주는 해탈의 자세는 좌탈, 입망, 도화의 세가지이다.

 좌탈은 가부좌를 튼채 맞는 죽음이다. 선사가 좌선한 채 유유히 죽는 자세이다. 입망은 똑바로 선 자세로 맞는 죽음이며 도화는 물구나무 선채로 죽는 자세이다. 국내에서도 좌탈의 자세로 입적한 선사는 최근만해도 한암스님과 효봉스님, 경봉스님을 들 수 있다. 

 한암스님(1876∼1952년)은 입적하기 전까지 27년간 오대산 상원암의 산문 밖을 나가지를 않았다. 입적하던 날 아침 죽 한그릇과 차 한잔을 든뒤 제자들을 법당에 불러 모아 법거래를 했다. 그런 다음 태연한 자세로 선상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태연히 입적했다.

 효봉스님(1888∼1966년) 역시 속세를 뜰 순간이 다가오자 시봉에게『이제 나는 갈란다. 나를 일으켜다오』라고 부탁한뒤 좌선에 들어가 자신의 화두를 7시간이나 되뇌다 열반했다. 

 경봉스님(1892∼1982년)도 임종직전 시자가 『스님께서 가시고 나면 어떻게 스님의 참 모습을 뵈올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야반삼경에 대문빗장을 만져 보아라』고 선답을 했다는 일화를 남긴 다음 좌탈의 자세로 입적했다.

 구한말에 태어나 해방직후에 입적한것으로 알려진 혜월스님은 입망의 자세로 해탈한 대표적인 한국의 선사이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직후에 걸쳐 선풍의 진작에 크게 기여한 스님은 부산 선암사 뒷산에서 솔방울을 따다가 솔가지를 잡은 채로 적멸의 길로 들어섰다. 

 도하의 자세로 입적한 선사는 중국 당시대의 은봉선사이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기행으로 유명한 스님은 아직까지는 거꾸로 서서 갔다는 사람이 없다는 제자들의 우스갯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물구나무를 섰다. 제자들이 놀라서 살펴보니 거꾸로 선채 이미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이기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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