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한 세월에 걸친 두 나라간의 마찰과 적대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이 조약체결은 장차 양국 국민에게 이익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역사적 사건이 될것입니다』 1963년 1월22일 낮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드골대통령과 아데나워총리가 불·독우호조약에 서명한후 발표한 공동선언의 한 구절이다. 그야말로 길게는 수세기, 짧게는 70여년동안 보불전쟁과 1,2차대전으로 맞붙었던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해 화해협력의 손을 잡은것이다. 이는 곧 종전 18년만에 과거청산작업이 완료됐다는것을 의미한다.
이 기간에 서독은 경제재건과 병행하여 지난날 나치독일이 프랑스 폴란드 체코 화란 벨기에등 주변국에 대해 저지른 침략과 살상만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면서 피해자들의 상처를 아물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서독은 「사실인정―사과―반성」만이 상처에 대한 최선의 치유책이며 진정한 과거청산의 방안이라고 본것이다.
서독의 노력중 가장 돋보인것은 자국안의 침략 범법자들에 대한 끈질긴 색출과 함께 타국침략과 유태인에 대한 말살등 나치의 온갖 만행을 초·중·고·대학교과서에 낱낱이 기술, 후대에 교훈을 삼도록한것이다. 이것도 미흡하다고 보고 서독은 이웃나라 역사학자들과 각국별로 상세히 기록한 「나치침략사」를 간행했다.
전후 불독관계를 지켜보면서 한일관계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우울해진다. 일제가 패망한지 50여년이 되고,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된지 30여년이 가까워오지만 겉으로는 관계가 발전했으나 진정한 한일관계, 국민감정은 조금도 달라진게 없다. 이유는 명백하다. 독일과 같이 일본이 과거 한국을 불법침략, 36년간 강점하면서 온갖 약탈과 폭거를 저지른 사실을 국가의 이름으로 확실히 시인―사과, 반성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1년 10월20일 동경의 미극동군사령부에서 열린 제1차 한일회담때 량유찬수석대표는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죄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괴로운 구원의 도끼를 묻으려한다(BURY THE HATCHET). 양국화해의 길은 사실인정, 사과하는것』이라고 말했는데 오늘까지 미결된 상태다. 지금까지 겉치레식 사과는 몇차례 있었다. 일국왕이 두차례, 력대총리가 연설에서 몇차례 했지만 공식적인 정부 문서로 제시한 적이 없다.
이를 두고 일본의 일부 식자들은 『도대체 몇번 사과해야 만족하는가』 『한국은 더 이상 투정을 부리지 말라』고 했는데 어느 면에서는 그들 말에 일리가 있다. 그런 다데마에(건전)식 형식적인 사과를 수백번 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일본이 과거행위에 대해 반성하지않는 대표적인 예는 국정교과서를 통한 력사왜곡이다. 과거의 침략·만행·약탈·살상을 부인· 미화·합법으로 위장하여 교육시키고 있다. 몇년전 오쿠노 세이스케(오야성량) 국토청장관은 『일본은 한국과 중국을 침략한 적이 없다』, 또 이시하라 신타로(석원신태랑)의원은 『일본은 남경대학살을 자행한 일이 없다』고 궤변을 해 아시아 각국의 분노를 산적이 있다. 여자정신대문제만 해도 그렇다. 당시 군국주의 일본정부가 전쟁수행을 위해 강제동원했음에도 「민간업자 주도와 군의 개입」으로 얼버무리는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일본은 자세를 근본적으로 고쳐야한다. 즉 경제대국에 걸맞은 도덕성을 갖춰야 하며 그렇게해서 주변국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신뢰를 얻도록 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전후 타성에젖은 일본의 정치체제, 국가경영의 틀과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혁, 쇄신하려는 호소카와(세천)총리에게 기대를 걸고자 한다. 사실 그가 취임후 첫 방문국을 한국으로 잡고 또 력대총리보다 조금 강도높은 사과를 했다고 해서 「묵은 과거」가 해결되는것은 아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과거 침략사실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그를 바탕으로 진심어린 혼네(본음)식 사과를 하며 피해국의 정신적 상처를 아물리는 노력을 해야한다. 한마디로 전후독일의 성심어린 노력, 그를 바탕으로한 우의어린 독·불관계를 거울로 삼아야할것이다. 그같은 과거정리의 노력 없이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아무리 강조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것이다.
차제에 호소카와새정부는 일본이 과거 주변국가에 자행한 모든 침략행위를 낱낱이 기술한 「구일본침략행위백서」를 공표할것을 권고하고싶다.
그렇게해서 진실을 밝히는 과거청산노력으로 장래 한·일 양국의 경우 정치·경제등의 협력은 물론 활발한 문화교류도 촉진하고 또 일본국왕의 방한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해야할것이다.
이번 방한을 계기로 호소카와총리의 진심어린 과거청산노력을 기대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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