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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향한 「깨침의 소리」 은은히…/성철스님이 남긴 법어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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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향한 「깨침의 소리」 은은히…/성철스님이 남긴 법어와 사상

입력
1993.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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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등 우회통해 남을 위한 삶 설법/진실한 자아탐구… 묵언으로 말 가치 강조도 4일 상오 열반에 든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철큰스님이 남긴 법문은 깨침의 소리가 집약된 글로서 그의 사상과 철학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스님이 과거 독재체제 아래서 깨침의 내용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무관심했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실제는 법어 속에 선사만이 갖는 독특한 어법과 은유를 담아 대사회적인 메시지를 보냈다고 불교계는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회구제 방법론에 대한 불교와 기독교의 본질적인 차이도 그러한 시각에 한 몫했다는 지적이다. 즉 사회나 정치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을 통해 사회 정의를 구현하려한 기독교와는 달리 인간의 심성을 올바로 교화시키는 우회적인 방법을 즐겨 택한 스님의 자세가 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비쳐졌다는 것이다.

 스님이 언젠가 대중에게 한 『우리가 아침 저녁으로 행하는 기도는 명빌고 복비는 불공이 아니라 자기 환기 작업이야. 그래서 불공은 일체 생명을 대상으로 하여 그 생명을 구제하는 측면에서 행해져야 해. 우리 주위에는 봉사활동이 많이 행해지는데 그러나 우리 불도들은 보살도정신을 이 시대에 실천하지 않고 있어. 그리고 자비행은 남몰래 해야 가치가 있어. 공덕은 남이 모르게 자비를 실천할 때 이뤄지는 거야. 예수도 말하기를 왼 손이 하는 일을 바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지 않아』라는 내용의 설법은 바로 보살도의 이타행을 강조한 스님의 사회관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스님의 법어속에는 개인 또는 사회를 향한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산시산혜 수시수혜)」스님이 81년1월 종정 취임 일성으로 내던진 법어다. 삼라만상이 그대로 우주의 법신체(생로병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진리의 몸체)일진대 그것을 깨닫지 못함을 아쉬워한 내용이다. 실상에 대한 개안을 외친 이 법어는 물질을 앞세운 삶의 허상에 매달려 쫓기고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허상에서 벗어나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중생이 원래 부처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모든 이에게 다시 한번 불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성인과 악마는 부질없는 이름이라 장엄한 법당에는 아멘소리 진동하고 화려한 교회에는 염불소리 요란합니다」 깨침의 경지에서 보면 석가나 예수나 공자가 따로 없으며 진리의 산은 하나이되 단지 종교마다 오르는 길만 다름을 강조하는 것이다.

 조계선맥의 림제가풍을 계승한 성철큰스님의 깨침의 세계는 법문에 나타나는 것처럼 진실한 자아탐구에 집중한 수행에 바탕을 두고 있다. 10년의 장좌불와와 10년의 묵언은 말의 공해에 시달리고 있는 오늘날 말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말이 진실한 의미를 담지 못할 때에는 소음이나 다름없다는 진리를 묵언을 통해 일깨웠다고 할 수 있다.【이기창기자】

▷대표 법문◁

○어떤 도적놈이

 어떤 도적놈이

 나의 가사 장삼을 빌려 입고

 부처님을 팔아

 자꾸 죄만 짓는다

○말이 있음이여

 말이 있음이여 말이 없음이여

 부처와 조사를 초월했네

 칡이 나무에 의지함이여

 하늘은 무너지고 땅은 꺼지도다

○참모습의 세계

 봄에는 오색이 찬란한 꽃동산에 귀여운 우리 어린이가 뛰어놀고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잎이 우거진 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흥겨워 춤을 춥니다

 이렇듯 날마다 설날이며 곳곳마다 들놀이니

 이는 끝없이 계속되는 참 모습의 세계입니다

 어허, 이 무슨 장관인가

 붉은 해는 지고 둥근 달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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