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사군자 등 선비기품 “은은”/수묵담채로 사실적인 미술세계 구현/김홍도·신윤복과 조선후기화풍 주도 김득신(1754∼1822)이 그린 한쌍의 산수도는 안정된 세계를 보여준다. 뜰안에서 벗과 마주앉은 주인은 연잎이 떠 있는 계곡의 물줄기를 바라본다. 기와지붕이 날렵한 사랑채 안은 검소하고 정결해서 주인의 인품이 풍겨난다. 가을은 한층 무르익어 붉은 감이 나뭇가지에 가득하다. 거대한 바위가 솟아오른 먼산 봉우리의 배경과 다리를 건너 찾아 오는 또다른 벗은 바로 자연과 인간이 조화되는 선비사회의 기쁨을 상징한다.
김득신은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집안 출신이다. 도화서 화원으로 유명한 김응리가 아버지이고 저명한 화가 김응환의 조카이다. 동생 석신과 량신도 화원이었다.
김득신은 조선후기에 김홍도 신윤복과 더불어 우리 풍속을 그린 3대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암 김롱두 소장의 김득신 그림을 보면 그가 풍속화 뿐만 아니라 산수도와 사군자에도 뛰어난 역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두암이 소장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추계유금도」2점 「산수도 쌍폭」「묵매도」「풍죽도」 각 1점씩 5점이다.
이들 5점은 국내에 남아 있는 김득신의 어느 작품보다 빼어나 김득신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 문화재이다.
흔히 김득신은 아홉살 위인 김홍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암 소장의「산수도」,「묵매도」,「풍죽도」를 보면 단원의 영향을 토대로 자기나름의 화풍을 만들어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을날 숲속 계곡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한쌍의 꿩과 토끼를 통해 가을의 서정적인 정취를 나타낸 「추계유금도」는 잎이 떨어진 수목표현과 바위의 선처리등에서 김홍도의 화풍이 풍긴다.
그러나 산수도 그림은 수묵의 세필로 정성을 들여 섬세하게 풍경을 묘사한 필치가 뛰어나며 푸른색과 누런색의 담채를 엷게 입혀 아주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안휘준교수(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는 『바로 이러한 화법이 김득신이 독특한 자기 세계를 세운것을 입증하는 대표적 예』라고 지적했다.
이 산수도에는 김득신이 다른 풍속화에서 즐겨 쓰던 호인 긍재를 사용하지 않고 그림 오른쪽위에서 보듯 담헌이란 호를 쓴것도 이색적이다.
묵매도와 풍죽도도 그 특유의 화풍을 보여준다. 굵은 가지가 위쪽으로 펼쳐 나간 사이 사이로 잔가지가 솟아 있고 그 잔가지에 여기저기 매화 꽃이 피어난다. 이 화면구성은 조선 중기의 전통적 양식이 뚜렷해서 후기에 새롭게 형성된 사군자그림의 화풍을 따르지 않아 이채롭다. 그의 능숙하고 탁월한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풍죽도는 조선중기의 전통을 더욱 충실히 따른 그림이다. 가늘고 긴 여러 줄기의 대나무가지에 바람에 휘날리는 잎사귀가 강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어느것하나 힘차 보이지 않는 구석이 없다. 대나무 숲의 기상과 세찬 바람의 기세가 잘 나타나서 격조 높은 선비의 지조를 표현했다. 그림 세계에서 일가를 이룬 김득신의 개성이 약여하는 수작이다.【최성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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