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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성철 큰스님 81년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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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성철 큰스님 81년 생애

입력
1993.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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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좌불와·무언수행 “살아있는 부처”/중생에 불성일깨운 선행 불교계귀감 4일상오 해인사 퇴설당에서 열반한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성철 큰스님은 살아있는 부처(생불)로 추앙받아온 우리 불교의 대표적인 선지식이었다.

 불교계의 가장 큰 어른으로서 또는 이 시대의 정신적 사표로서 스님이 일군 업적은 우리의 현대사상사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한국불교 정통 수행론인 돈오돈수(한번에 깨침)에 바탕을 둔 스님이 수행의 도정에서 보여준 16년의 생식과, 6년간 한번도 드러눕지 않은 장좌불와의 수행자세는 살아있는 신화로 인구에 회자되고있다. 스님의 오도적 삶 자체가 운수의 질서를 벗어나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여불동한 바위처럼 한 곳에 눌러앉아 스스로 자연이 되고 물 소리와 바람 소리가 되었다.

 조계종 종정에 추대된 뒤 취임 일성으로 던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구절은 바로 대선사로서 스님의 깨침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법어였다. 스님의 법어에는 수행인은 누구나 관념의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무위진인의 원형을 자기 내부에 재현할 때 자성이 그대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인식시키는 내용이 관통하고 있다. 이때 비로소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가 법신체가되고 사부대중 전체가 깨닫지 못한 부처임을 깨닫게 되는것이다.

 일제가 우리 민족을 강제로 집어 삼킨 직후인 1912년 4월10일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 목곡리에서 태어난 스님(속명 이영주)은 35년 해인사에서 당대의 선지식 동산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스님이 출가전 결혼으로 태어난 딸 불필 역시 스님의 뒤를 따라 출가해 비구니로 수행하고 있다. 입적할 때 까지 해인총림 초대방장(68년)과 종정을 역임한 60년 가까운 스님의 오도적 삶은 중생의 가슴속에 묻혀있는 불성을 일깨우는 모범이 됐다.

 성철스님이 조계종 6대 종정에 오른것은 81년 1월. 바로 전해 10월27일 불교 1천6백년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히고있는 「10·27법난」의 소용돌이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다. 5공을 출범시킨 신군부가 정통성확보의 수단으로 불교를 사회악의 표본으로 조작하여 전국의 사찰과 스님을 군화발로 짓밟은 「10·27법난」은 불교계에 회복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남겼다. 스님은 이런 와중에 종정으로 추대돼 실추된 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회복하는데 노력했다. 또 스님의 수행론이 잘 드러나있는 저서 「선문정로」는 불교계에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수행을 통해 단계적으로 깨침)의 두가지 수행 방법을 둘러싼 논쟁을 가져와 불교계에 공부하는 분위기를 형성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불교계와 사회 일각에서는 스님이 깨달음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다소 무관심하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의 여론도 늘 있어왔다. 80년대 민주화운동과 인권 투쟁과정에서 우리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스님의 한마디 말씀이 아쉬운 시기에 너무나 탈속의 자세를 견지해 왔다는 것이다. 

 스님은 그러나 종정에 취임하던해 종단의 간부들에게 『출가자에게는 출가의 본분이 있어. 치열한 구도정신을 갖고 견성실험을 하여 자기 내부에서 진실한 자기를 실현해야해. 그리고 올해부터는 싸움하지 마. 싸움으로 인해 타율적 정화를 당한것이 아니냐. 출가자에게 큰 문제는 일대사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는것이 시급한 문제이지…』라고 밝힌 견해는 그러한 세간의 아쉬움을 씻어주고있다. 

 스님은 대구 파계사에서 철조망을 치고 10년간 두문불출 정진을 끝마치면서 독특한 가풍을 정립했고 「성철 불교」의 면목이 세상에 알려졌다.신도들이 스님을 면회하려고 찾아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3천배를 하도록하는 특이한 교화 방법은 참회와 자기환원의 수행 방법이라고 알려져있다. 스님은 독학으로 불어 영어 독어 일본어 중국어를 터득하기도 했다. 스님은 소금을 섭취하지 않은데다 오랜 참선으로 말년에는 관절염등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이기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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