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은 살아있다. 역사는 결코 실종되지 않는다. 우리 언론사에서 「최악의 통분」을 남긴 언론통폐합은 신군부의 초법적인 강요와 치밀한 협박작전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재확인되었다. 생생한 실증적 자료인 「언론사 포기각서」의 진본이 13년만에 처음 세상에 나타났다. 당시의 급박하고 위압적인 정황을 그대로 증언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폐간의 수모를 겪은 서울경제신문을 비롯한 45개사 언론사주들은 사실상 강제 연행된 상황에서 각서를 썼다. 그 내용과 형식은 신군부가 이미 작성한 그대로였고 날짜마저 같은데다 황망한 가운데 도장이 아닌 지장을 똑같이 찍은것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6공 청문회에서 이미 언론통폐합을 비롯한 탄압행위가 밝혀졌지만, 언론을 정권장악과 유지의 도구로 삼으려던 하수인과 해결사는 당시의 문공부·보안사등이었음을 더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통폐합을 구상하고 집행한 주역이 좀체 확연하게 밝혀지지 않은채 정체를 숨기고 활보하고 있음이 또한 통분스럽기만 하다. 언론 스스로의 추적이 미흡했음도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피해자는 엄연히 있는데, 가해자는 가면을 쓰고 있는 현실에 우리는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언론사주들을 강제 연행해서 각서를 쓰게한 당사자가 있었다면, 그런 지시를 내린 장본인이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마냥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우리는 애써 과거사에 집착하지 않으나, 억압과 가해에 대한 적절한 복원의 노력과 대응이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피해 언론사들은 6공이후 진상과 책임규명 그리고 원상회복을 위해 배상 또는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낸바 있다. 역사의 치욕과 불법성을 정식으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사법부는 소송청구시효 3년이 지났다거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등의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이같은 경직된 형식논리의 법해석이 더이상 없어야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언론포기각서라는 분명한 증거의 등장을 가볍게 다뤄서는 안된다는 의견이다.
문민정부는 12·12사건을 쿠데타적인 하극상으로 규정했다. 언론통폐합도 같은 맥락에서 그 성격을 따져야 마땅하다. 역사엔 미래가 중요하다는것을 강조하려면, 그만큼 잘못된 과거의 정리가 요구된다. 언론은 아무도 이용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것이 민주사회의 원칙이다. 과거의 불행은 완전한 치유가 없는한 불행 그대로 남는다. 모든 초법적인 행위가 법의 준엄한 제재를 받을 때 법의 정의가 살아날것이다. 법의 정의가 곧 사회정의의 바탕임을 강조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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