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80년대를 지나오며, 제 집이 있어서 늘 송구스러웠다. 땅값이 치솟아 웬만한 집이라면 졸지에 억대가 되었고, 쪼갤 수도 없는 억대의 집을 다 차지하고 산다는것이 꼭 죄짓는 일만 같았다. 나의 조그만 첫 집을 많이 생각했다. 부동산투기란 게 없던 시절이라 학창시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에 부모님 도움을 보태어 마련할 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꿈도 못 꿀 그 집 생각이 날 때면, 어떻게 어수룩한 때 살림을 시작하여 없는 재주에 용케 그나마 집칸 지키고 살아왔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기도 하다가 또다시 요즘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느낌으로 생각이 마무리되곤 했다. 그러면서도 세월이 가다보니 쭈뼛쭈뼛 작은 차도 한 대 끌고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치솟은 땅값이 물가에 다 얹히면서 슬금슬금 집을 한 평만 쪼개 팔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집가진 사람들마저 억대 거지가 되었구나, 만인이 피해자가 되었구나 싶어 어처구니 없기도 했다. 그래도 늘 자신이 나누어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몇 달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헤아려 보게 되었고, 누구나 혹독한 허탈감에 빠졌다. 그 상대적인 보잘것 없음에 「나는 무얼하고 살았나」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늘상 부채에 쫓기듯 나누어야 할 듯한 느낌으로 조급했던 자신이 가소롭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분노와 허탈감을 나누는 사이 우리는 「주제넘은 죄의식」을 슬그머니 청산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지간한 중산층이면, 아니 웬만한 부유층까지도 자신있게 「면죄부」 하나씩을 챙겼다고나 할까.
80년대를 통하여 날카롭게 버려진 비판의 칼이 우리 자신만은 향하지 않을 때의 무서움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자유에의 추구가 방만과 고립으로, 다양성의 추구는 가치부재와 혼돈으로 반전해가는 위험이 예견되는 포스트모던 시대. 자제의 고삐를 잃은 내가 어디로 갈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상당히 뻔뻔스러워질것같은 예감이다. 얼마만큼은 「막」살아질 듯한 느낌이다.
혹시 이런 예감이 나만의 것으로 그치는게 아니라면, 그것은 극소수의 엄청나게 가진자가 끼칠 수 있는 해보다 더 큰 해악이 될것같다. 뭐든 나누어야 할것같던 80년대, 조금이나마 가진 자의 부끄러움은, 돌이켜보면, 지키고 싶은 또 지켜야 할 우리들의 순결같은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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