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용 선거운동 등 유죄 인정/재판부,민감사안 염두 “공정”강조/“징역3년”에 정씨 한동안 재판장 응시 대통령선거법위반으로 불구속기소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피고인(78)에게 법원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도 「고령을 고려해」 법정구속을 피한것은 일단 법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일반의 법감정을 배려한것으로 평가할수 있다.
재판부의 실형선고는 「선거법위반에 관대한 법원」이라는 기존 인식을 불식하려는 법원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담당재판부인 서울형사지법 합의25부(재판장 량삼승부장판사)는 정피고인의 선고판결에서 『피고인이 모든 사태에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혀 정씨가 현대그룹임직원들의 대통령선거법위반사건에 최종책임을 져야함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정피고인이 창업한 기업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한것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를 통한 여론형성을 방해하는것으로 대선법상의 특수관계 이용금지조항이 예상하는 가장 나쁜 사례에 해당된다』며 엄격한 선거법적용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현대중공업의 비자금 4백33억원을 선거자금으로 유용한것에 대해서도 『공금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한것은 크게 비난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법원은 국민당의 정치자금조달방법, 기업조직을 이용한 선거운동, 산업시찰을 통한 당원연수등을 모두 유죄로 인정, 「금권·과열선거운동」을 단죄했다.
과거 관례대로 집행유예가 선고돼 일단락될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실형을 선고받은 정피고인은 계속 불구속상태에서 2심재판을 받게 됐다. 하지만 앞으로도 치열한 법정투쟁을 계속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이번 공판에서 두드러진 모습은 재판부가 엄격한 법적용 못지않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임을 염두에 둔듯 법원의 공정한 입장을 강조한 대목이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판결문에 「재판부의 마음가짐」이라는 별도항목을 두어 「재판을 할 때 불의를 행하지 말라.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고 세력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정하게 재판하라」는 구약성서 구절을 인용했다. 또 세계적 지성 버트런드 러셀이 데모주동으로 재판을 받을 당시 훈방정도로 그칠것이라는 세인의 예상과 달리 영국법관의 소신에 따라 법대로 30일간의 구류를 받은 일화를 소개하면서 재판부가 공정성을 견지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은 결과가 어떻든 법률적인 판단을 넘어 법률외적인 영역과 연관돼 해석되고 오해받을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법률적으로 검토된 사안만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권경쟁」의 산물인 이 사건은 「정치보복」으로 보아온 면도 일부에서 있었고, 법원이 정계거물이 관련된 선거법위반사건에서 실형을 선고한 전례가 없었던 점등을 염두에 둘때 재판부가 과연 법률적 판단에만 충실했느냐에 대한 이론의 시각도 없지 않는게 현실이다.
○…『집행유예가 유력하다』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징역3년의 실형이 선고되자 정주영피고인은 충격을 받은 듯 피고인석에서 일어나서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재판장을 응시했다.
방청석에 있던 정피고인의 동생 정세영현대그룹회장, 아들 몽준씨(무소속의원), 국민당 및 현대그룹관계자등 2백여명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통한 표정으로 『이럴수 있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기도.
정피고인은 법정을 떠나면서 기자들에게 『무슨 할말이 있겠냐』고만 말해 불편한 심기를 노출시켰다.
○…재판부는 선고직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정피고인의 자서전을 인용, 『피고인은 어떤 시련이 닥쳐도 생명이 있는한 실패는 없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고 술회하고 있으나 이같은 신념도 경우에 따라선 절제를 필요로 한다』고 정피고인의 무리한 정치행각을 간접 비판했다.
재판장 량삼승부장판사는 공판에 앞서 『어떤 판결을 내리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될 줄 안다』며 『무슨 오해가 빚어지더라도 이번 판결은 법대로 이루어지는것』이라고 재판부의 고충을 토로.
○…이종순변호사등 변호인들은 『국민 대다수가 피고인이 고령이고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해 온 공등을 감안, 집행유예가 선고될것으로 믿었을것』이라며 『재판부가 이를 인정하면서도 실형을 선고한것은 이 재판이 정치재판임을 입증하는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들은 『피고인을 기소한것 자체가 무리』였다며 『오늘중 항소하겠다고』고 밝혔다.【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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