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을 바라보는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젊고 늘씬한 자태, 귀부인같은 용모에 세련된 매너, 그리고 언제나 머금고 있는듯한 은은한 미소. 세계비극의 현장에서 유엔구호활동에 젊음을 살라온 영국의 마거릿 앤스티여사(67)의 첫 인상이다. 앤스티여사는 지난 6월 앙골라에서의 구호활동을 끝으로 은퇴한지 4개월만에 최근 또다시 안데스산맥 해발 4천 고지대에 사는 인디언을 돕기 위해 떠났다. 나이를 잊고사는 정열의 화신이다.
『추구할 꿈과 베풀 여력이 있는한 행동한다』는게 그의 생활철학이다. 인쇄식자공이었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 믿음은 유엔과 인연을 맺으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내미는 구원의 손길로 형상화됐다. 유엔구호현장의 꽃으로 활동했던 험난하면서도 행복한 시절은 그가 케임브리지대에서 현대 및 중세영어를 전공, 수석의 영예를 안고 영국외무부의 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됐다.
군부통치하의 칠레, 내전의 앙골라, 체르노빌 핵누출현장, 대지진의 멕시코등 약 30년사이에 일어났던 세계 최악의 사건현장이 바로 삶의 무대였다. 물론 언제나 주연배우였다. 유엔 최초의 여성 현장파견관리·사무차장·평화유지활동 책임자등 화려한 경력이 이를 입증한다.
앤스티여사가 아직도 안타깝게 여기는것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는 앙골라내전을 종식시키지 못한 일이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중재한 앙골라정부측과 반군간의 휴전협상이 완전타결을 눈앞에 두고도 휴전감시군 파견에 미적지근한 유엔측의 태도로 물거품이 됐던것이다. 그때 느낀 좌절감은 육체적으로 입은 총상못지않게 그에게 깊이 각인돼있다.
그에게 가장 고통스런 기억을 안겨준 곳은 군사독재하의 칠레다. 일주일에 수천명씩 찾아와 유엔의 도움을 절규하는 칠레인과 강변에 즐비한 시체를 대할 때마다 그는 몸서리치며『나는 과연 인류에 대한 진정한 봉사자인가』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엔 비극의 현장을 가로질러온 그늘을 찾아볼수없다. 단 한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못하는 그의 심성때문이다.【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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