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대학에서 총장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인간적인 모욕까지도 감내하면서 흔들리지 않는것을 보면,총장들의 큰 그릇에 새삼 놀라울 뿐이다. 미국대학 개혁의 기수로 불리던 40대 총장 허친스박사가 오죽했으면 대학을 모기떼로까지 비유하면서 대학총장이 지녀야 할 덕목으로 용기, 인내, 정의 그리고 관용같은것을 꼽았겠는가. 개혁의 대상은 대학교수이라기 보다는 대학총장이다라고 일침을 놓는 대학교수는 대학교수가 대학의 명성을 빛내는 근원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대학교수는 이 사회가 불가능하다고 포기해 버린것을 가능하도록,이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문명의 도전자이며「사회발명가」이기에 그들이 대학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대학교수는 2평짜리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있으면서도 사회전체 움직임의 중심에 서 있어야만 되는 사람들이라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대학교수 스스로 자기개혁의 주동이 되는 적은 드물다. 그래서 대학교수란 대학개혁의 원동력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개혁에 거슬리는 보수세력으로 몰리게도 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염려되는것이 있는데 그것은 학생의 눈에 비치고 있는 추한 교수상이다. 민주주의를 강하게 역설하는 사람들중의 하나가 대학교수들 이건만, 그들 눈에 비치는 교수상은 제일 비민주적이다. 권위주의를 처절하게 혐오하는 교수들이건만, 그들만큼 권위주의에 탐닉하는 집단도 드물다. 합리주의를 강변하는 그들이지만 그들만큼「탈」합리적인 사람도 없을 성싶고, 그들스스로 진리를 가르친다고는 하지만 그들만큼이나 탐구하기를 게을리하는 집단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성싶다는 꼬집힘이나 당하고 있다. 대화의 중요성을 입버릇처럼 되뇌는 그들이건만, 그들이 기껏 보여주는 대화의 능력과 토론의 질은 갓 입학한 신입생만도 못하다는 야유도 받고 있다.
대학교수사회와 대학문화를 이렇게 처참하게 만들어 놓고 있는 여러가지 대학안의 사건들 중에서도 대학인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일들은 투서와 유인물돌리기이다. 모함과 고자질, 그리고 몇몇 사람들에 대한 흠집내기로 일관되고 있는 익명의 투서질과 유인물 돌리기는 탐구를 통해 지식을 창조해내야 하며 가르치는 일을 통해 민주주의를 전파해내는 교수들이 해내기에는 힘에 부치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즐기는 사람들은 말없이 연구나 하고 있는 다수를 향해 마치 한덩어리의 호박을 향해 발길질이나 하듯이 대의명분과 절대성을 내세우며 비겁자라고 질책하기를 겁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투서질을 해대는 그들은 가히 맹수적이리만큼 처절하고 표독스럽기마저하다. 이런 상황에서 쥐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먹이가 무엇인지를 서로 분간해 냄으로써 그들을 서로 익히지만,식물은 삶의 향기로서 서로를 분간한다는 식물학자들의 관찰은 교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지난 어느날 모대학교 교정에서는 대학생 주최로 총장신임에 관한 토론이 벌어졌었다. 이때 참석했던 한 학부모는 대학생들의 질서정연한 토론광경을 보고 더 배워야 할것이 많은 사람은 학생이라기 보다는 교수들이 아닌가하고 의아해 했다고 한다. 총장의 진술과 문제를 제기한 교수의 입장을 진지하게 경청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조리있게 개진하고 마지막에는 전체학생들의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해내고 며칠이 지난 후에는 총장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까지 했다. 이런 일은 학생 스스로 성숙한 대학문화의 가능성과 동시에 교수에게 토론문화는 이런것이다하고 한 수를 넌지시 가르쳐 주고 있는 「신대학문화」의 한장면일 뿐이다.
새롭게 커가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면, 이제는 대학의 시위문화에 대해 더 염려해야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죽어있는 교수문화를 더 걱정해야 한다. 교수문화가 바뀌어야 대학도 살겠기에, 사회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대학교수에 대한 따가운 눈총을 진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학사회가 학문발전을 위해 필요로 하는 대화 대신에 투서질이나 일삼고 있는 대학인의 유인물정서를 사회인들이나 학생들이 곱게 보아 줄리가 없다. 이것을 고치지 않는 한, 교수들 스스로 민주주의의 천국을 이땅위에 실현시키려는 시도는 끝내 반칙투성이의 지옥이나 만드는데 그치고 말것이라는 비아냥을 피하지는 못할것이다. 이런 핀잔이 싫거든 교수 스스로 분초를 낭비시키는 유인물 정서부터 거부하고 서로가 민주적으로 대화하며 모두가 대의제적으로 공론하는 토론문화부터 익히면서 교수문화부터 개혁해 보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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