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총발간·일대기 TV다큐물 등 제작/한국언론 선구적 족적 재조명 한국근대언론은 조선 선비의 강직한 기개 위에 서구의 근대언론제도가 수용돼서 구국을 위한 지사들의 필봉이란 성격을 가지고 시작됐다. 지금 국민이 언론을 신뢰하고 언론의 영향이 어느 나라보다 크나큰것은 구한말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민족의 의지를 대변했던 전통을 지닌 까닭이다. 그 당시 앞장서서 활약한 대표적 언론인이 위암 장지연(1864∼1921)이다. 문화체육부는 11월을 「장지연의 달」로 정해서 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등 관련단체와 함께 기념 학술세미나를 비롯한 갖가지 행사를 벌인다.
위암은 경상북도 상주의 유학자 가문에서 출생해서 평생을 민족을 위한 삶으로 일관했다. 두드러진 업적은 언론인 계몽운동가 학자의 세계에 넓게 펼쳐있다. 그는 1894년 나이 20세의 약관에 진사가 된 뒤 급박한 민족의 위기를 맞아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다음해 일제가 민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르자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지어 각처에 보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하여 국제 외교 무대에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환궁을 요청하는 만인소를 기초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국민을 깨우치는 계몽운동과 국민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적극 활약한것과 1898년 9월 황성신문이 창간될 때 기자로 나선것은 그 때문이다.
언론인 장지연의 업적은 1905년 을사륵약을 당해 쓴 11월20일자 황성신문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에서 빛난다. 1901년 황성신문 사장에 취임하여 민중계몽과 민족자립을 고취하는 활동에 힘쓰다가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을사륵약에서 보고 온몸을 던져 항의한것이 이 사설이었다.
한국 근대의 가장 뛰어난 글중 하나인 이 사설에서 위암은 일제의 국권침탈 사실을 폭로하고 을사5적을 규탄하면서 국민의 총궐기를 호소했다. 일제 헌병대의 사전 검열을 거부하고 전국에 배포한 황성신문의 이 사설은 그뒤의 반향이 지대했다. 1905년 이후의 의병봉기는 바로 장지연이 촉발시킨 반일 분위기 속에 이루어진것이다.
위암은 1908년 블라디보스토크에 망명하여 해조신문 주필로 있다가 신문사가 문을 닫자 귀국한 뒤 1909년 진주의 경남신문사 주필로 일했다. 1910년 나라가 망하는 날인 8월29일자에 전남 구례의 지사 매천 황현의 유명한 「절명시」를 게재했다. 그의 활동 모두는 투옥과 신문사 정간등 모진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민족의 정기를 바르게 밝힌 쾌거로 평가된다.
위암의 언론활동은 깊이있는 그의 학문세계와 직결된다. 유학의 바탕 위에 서구 학문의 신지식을 섭취한 그는 스스로 실학의 전통을 계승해서 국학연구에 몰두했다. 「대한강역고」 「조선유교연원」 「일사유사」등은 그 분야의 분류사에서 선구적인 저술이다.
또한 조선후기 실학을 되살려낸 작업도 뛰어난 업적이다. 대한제국 당시 우리 전통문화를 토대로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구본신참의 기치 아래 계승 발전시킬 과거의 학문으로서 실학자들의 저술들이 주목됐다. 위암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흠흠신서」를 간행하는 일에 적극 참여했다. 이 활동으로 역사상 처음 정약용과 그의 저술이 부각돼 사회 각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최성자기자】
◇장지연의 달 기념사업
▲제4회 위암장지연상시상식=1일 하오5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기념학술세미나=1일 하오2시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위암 장지연의 언론활동과 언론사상」(정진석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교수) 「위암 장지연의 국어연구 업적과 자강사상」(구자혁인천교대교수) ▲MBC TV 다큐프로제작방영=17일 하오10시55분 「위암선생의 생애와 사상」 ▲KBS TV 대담프로방영=11월중 ▲EBS TV 다큐프로제작방영=24일 하오7시20분 「인물 한국사」 ▲위암일대기 다큐프로방송=20일 하오11시10분 「11월의 문화인물 위암 장지연선생」 ▲위암논총발간=위암장지연선생 기념사업회 「위암 장지연의 사상과 활동」등 논문17편 ▲위암 장지연선생 단행본발간=동아일보사 「근대인물한국사 장지연편」(구자혁저) ▲위암장지연 유품 및 관련자료전시회=22일부터 12월4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 전시실 일사유사등 4백여점 ▲위암유적지 탐방=한국프레스센터 13·14일 경남마산시현동 위암묘소참배 ▲위암 장지연선생 추모백일장=문인협회 상주지부 25일하오1시 경북 상주시 남산공원 ▲기념표석설치=위암 장지연선생 기념사업회 94년중 현 보신각 근처 황성신문사터 720―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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