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또 못이룬 숙망/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또 못이룬 숙망/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북)

입력
1993.11.01 00:00
0 0

 지난 10월7일까지는 북은 태평성대의 나라였다. 동북아를 휩쓴 냉해에도 성군을 모신 이나라는 풍요롭기만 했다. 9월24일자 「로동신문」2면의 전단 제목은 길다. 『우리 수령님 은덕으로 이 땅에 만풍년 든다』였다.

 8월31일 이곳을 들른 수령에게 연안군 천태 협동농장 여성관리위원장은 목이 메어 「말씀」올렸다. 『수령님! 올해에는 어버이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크나큰 은덕으로 연백벌이 생긴이래 처음으로 농장마다 물과 비료를 마음껏 써서 농사가 정말 「소리치게」잘되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팔순도 지나셨는데 농사에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10월7일자 「로동신문」 1면 톱기사는 『위대한 수령동지께서 과수업부문 사업을 지도하시었다』였다. 수령은 레닌모에 금테안경, 회색정장차림에 뒷짐을 지고 밝은 모습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싼 북의 핵심 테크너크랫들은 종이, 수첩에 적는척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수령을 둘러싼 강성산 총리, 한성롱 노동당 경제중공업 담당비서(정치국위원), 서윤석 평남도 책임비서(정치국위원), 부총리들인 최영림(금속공업부장), 홍성남, 강희원, 김달현(국가계획위원장), 김복신(경공업부장), 김윤혁, 전총리 연형묵, 서관희 당농업 담당비서등의 표정은 어둡다. 북의 경제를 풍년들게 만든 핵심들의 「성군」을 모신 표정들이 왜 이럴까.

 수령이 1933년 동만 왕청현 가야허에서 외쳤던 「숙망」. 그로부터 60년후 올 신년사에 다지 다짐했던 숙망. 『모든 사람이 다같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 살게하자』는 「세기적 염원」이며 간절한 희망은(「남과북」 2월9일자 「숙망」) 또다시 내년으로 넘겨졌기 때문이다.

 지난10월20일 새벽6시. 북의 「조선 중앙방송」은 이례적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가 18일 열렸다고 공표하고 그내용을 자세히 보도했다.

 기록에 의하면 정치국회의의 토의내용 공개는 88년9월 당 구호결정 발표, 91년10월 수령의 중국 방문결과 토의를 보도한 이후 세번째다.

 이번 정치국 회의의 주제는 간단한 것이었다. 64년 2월25일 수령이 중앙위전원회의에서 밝힌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94년2월25일까지 완수하자는것이다.

 수령은 「테제」에서 농촌에서 3대혁명(사상·문화·기술)수행, 농업에 대한 공업의 지원, 농촌에 대한 도시지원강화, 농민의 협동적소유를 전인민의 소유로 바꾸어야 한다고 거창하게 말했다.

 그러나 수령은 이를 쉽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인민들의 생활에서 먹는 문제를 푸는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의식주라고 하던말도 식의주로 고치도록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서 먹을 걱정만 없으면 다른것은 크게 걱정할것이 없습니다』

 이번 정치국 회의의 감춰진 뜻은 딴데 있지 않다. 수령은 지난 4월30일 평남 온천군 「6·3 협동농장」 현지지도에 나섰다. 그후 평양·함북, 연백등 6군데 현지지도를 거쳐 9월18일 「6·3 농장」에 다시 왔다. 그 결과는 30년전, 아니 60년전 품었던 흰쌀밥의 숙망은 아직도 멀었다는 것으로 집약된것 같다.

 북은 이 회의가 있기전까지 그자체 기상청과 세계기상청의 자료가 한반도의 6월∼8월의 평균기온이 4도나 떨어졌고 강우량은 예년의 30∼60%라는 지적에도 『냉해는 없다. 만풍년이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10월7일 과수농장에서의 북 경제 핵심관료들 표정이 왜  어두웠을까. 수령은 이달11일 애커만 미하원의원을 만나고 15일에는 판문점에서 특사교환 제2차 실무회의를 개최케 했다. 그리고 18일 정치국회의를 열었다. 비공개인데도 당·행정 책임일꾼이 방청케 했다.

 「6·3농장」에서 돌아온 후의 1개월 동안의 수령의 장고는 결국 30년전 「테제」가 아직도 미완성이었다는것을 실감한것일 것이다. 핵무기를 만들기에 쏟은 미친짓은 흰쌀밥대신 굶는 걱정을 주게된것을 만각한것일것이다.

 정치국 회의는 내년 2월25일까지 농촌에 비료를 더 공급하고 협동농장을 기업적으로 관리해야하며 교통운수부문은 비료등 영농물자를 제때 농촌에 운반해야한다고 결론지었다.

 남의 김덕안기부장은 지난26일 국회외무통일위에서 비공개로 분석했다고 한다. 『북은 경제사정등의 악화로 핵사찰을 수용케 될것이다』 『북에서는 탄광의 사보타주, 절도, 폭동이 일어나는등 불만세력이 늘어나고 있다』

 수령은 두가지 숙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흰쌀밥, 비단옷, 기와집을 인민이 갖는것이다. 또하나는 수령의 유일지도체제를 아들에게 승계하는것이다.

 그길은 가깝다. 인민에게 한손에는 낫, 한손에는 망치만 들게 하는것이다. 손은 둘밖에 없는데 핵무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세번째손이 어떻게 생길수 있겠는가. 죽기전까지 숙망을, 태평성대를 누리기위해서는 인민을 세다리로 뛰게하지 말아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