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정부투자기관(국영기업) 경영쇄신방안을 발표할 때만 해도 경제기획원에는 개혁적인 분위기가 넘쳐 흐르는것 같았다. 『개혁적 차원에서 공기업 경영쇄신방안을 마련하라』는 김영삼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강조하며 12개과제의 경영쇄신방안을 설명하는 담당국장의 표정은 자못 결연해 보였다. 기획원은 그동안 나눠먹기식 방만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 휴가제도 자녀학자금지원 주택자금융자 사택지급등 임직원의 복지후생제도를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기자들이 『복지후생축소는 노조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인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느냐』고 묻자 담당국장은 『기관장책임하에 노조와의 협의를 거쳐 반드시 추진토록 하겠다』고 강조했었다. 기획원의 이러한 개혁의지강조가 한밤중 무서운 곳을 걸어 갈 때 내뱉는 겁쟁이의 헛기침 같은것임이 불과 4일뒤 확인되고 말았다. 이경식부총리는 지난 25일 이러한 경영쇄신책에 강력 반대하여 항의차 방문한 노총위원장과 정부투자기관노조대표들에게 『현재의 복지수준과 근로조건이 저하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핵심적인 경영개선과제를 사실상 백지화해 버린것이다. 이부총리는 자신이 서명한 서류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노조의 엄포에 밀려 결제내용을 번복해 버린 결과가 되고 말았다.
김영태차관도 『경영상의 불합리한 내용을 개선하려는것이었는데 복지조건을 줄이는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어 노조가 반발하고 있다』고 정책번복의 책임을 언론에 떠넘겼다.
이부총리는 지난 3월에도 담당국장이 발표한 정책내용(금융실명제일정제시)을 『내입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가볍게 뒤엎어 버린 적이 있다. 결국 출입기자들과 담당국장만 「곰바우」가 되고 만 셈이다. 이부총리는 업종전문화 실명제보완대책(장기채권발행) 현대그룹설비자금공급 상업차관허용등과 관련해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말을 많이 했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것인지. 경제팀장인 부총리의 말은 무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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