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기적이었다. 이처럼 극적이고 감격적인 장면은 한국축구1백년사에 일찍이 없었다. 카타르경기장에 모여든 관중들이나 취재진, 심지어는 벤치에서도 후반에 들어 잇달아 터지는 고정운, 황선홍, 하석주의 연속골에 신바람이 일지 않았다. 현지에서 긴급대여한 워키토키에서는 「사우디 4―2 이란, 일본 2―1 이라크」라는 마지막 교신이후 더이상의 소식은 없었다. 한국 취재진은 이날 세군데 경기장으로 분산됐으며 각각 1대씩의 워키토키로 상황을 주고 받았다. 경기종료 5분을 남겼다. 벤치에 앉아있던 김호감독이 고개를 돌려 바로 뒤쪽의 기자석을 응시했다. 타구장의 상황에 변화가 없느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고철처럼 놓여있는 워키토키에서는 더 이상의 소식이 없었고 취재진들은 애써 김감독의 눈초리를 피할수 밖에 없었다. 김감독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경기는 끝났다. 3회연속 월드컵진출의 꿈은 이처럼 허망하게 사라졌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벤치에서 일어난 코칭스태프나 운동장에서 힘없이 걸어나오는 선수들은 모든것을 포기했고 취재진들도 무거운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죽은듯 누워있던 워키토키가 「지이익―」하며 숨을 쉬기 시작했다. 곧이어 터져나온 비명소리는 「골」이었다. 1분늦게 경기가 시작된 알아흘리 경기장에서 터져나온 외마디 외침이었다.
기자석은 순식간에 흥분으로 휩싸였고 이 소식은 곧바로 퇴장하던 선수들에게도 전해졌다. 이라크의 동점골을 재삼 확인하던 선수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 소식에 일순 멈칫하더니 곧바로 부둥켜 안고 울기 시작했다.
소리내어 울부짖는 선수들을 품에 안은 김호감독의 눈가에도 그렁그렁 눈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외도 한번 없었던 50평생의 축구인생을 이번대회에 걸었지만 일본전의 패배로 모든것을 포기해야 했던 김감독이었다. 그러나 불과 1분사이에 지옥과 천당을 실감하며 결국 본선진출의 당초 목표를 실현시켰다. 한국팀의 지옥과 천당은 일본팀의 반대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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