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경제체제」로 가는 불가피한 선택/통화증가물가불안 고리단절 과제 정부의 손에 쥐어져있던 금리규제의 고삐가 이번 2단계 금리자유화조치로 절반은 풀리게 됐다. 수십년간 정부의 통제아래 묶여있던 금융기관의 돈값(금리)이 자유경쟁의 원리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는 경쟁체제가 허용되는것이다.
2단계 금리자유화의 기본골격은「대출금리 자유화, 예금금리 일부규제」다. 금융기관의 업무중에서 절반을 차지하는 대출부문의 금리는 대부분 자유화하고 나머지 절반인 돈을 예치하는 예금부문의 금리는 그 상당부분을 다음단계의 자유화때까지 당분간 규제상태로 묶어두겠다는것이다.
2단계 금리자유화에 따른 자유화비율을 보면 은행이 대출 68%, 예금 40%이고 비은행금융기관은 대출 1백%, 예금 64%등이다. 전체 금융기관을 합산하면 대출이 84%, 예금이 57% 정도 자유화되는 셈이다. 그러나 금융기관중에서도 지급결제기능을 독점하고 있는 은행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자유화비율은 절반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자유화는 일단 량적인 기준으로 봐서「절반의 자유화」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의 2단계 금리자유화는 돈값의 완전자유화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인 예행연습단계에 해당된다고도 할 수 있다. 94∼96년사이에 요구불예금을 제외한 모든 예금금리가 규제에서 풀리는 3단계 금리자유화가 단행되면 예금과 대출등 모든 금리가 사실상 완전자유화상태로 들어가는데 그 시점이 오기전까지 주요 예금금리는 묶어놓고 대출금리만을 풀어 금융기관들이 자유화의 공기를 마셔보고 여기에 익숙해지도록 하자는것이다.
자유화가 많이 진전된 실물경제와 마찬가지로 금융의 핵심인 금리를 자유경쟁의 원리에 맡기는것은 원칙적으로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일이다. 낙후된 금융분야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자유화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문제는 바람직해야 할 자유화가 시기선택 여건성숙 사후보완등의 여러 측면에서 완벽하지 않을 경우 금리상승이나 물가불안이라는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 경제를 살리려는 당초 의도와는 정반대로 경제를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88년12월에 단행된 야심적인 대출금리 전면자유화는 이런 점에서 아직도 생생한「실패의 거울」이다. 의욕이 앞섰던 당시의 자유화이후 정부는 금리를 안정시키겠다고 돈줄을 느슨하게 풀었다. 바로 다음달에 총통화증가율은 20%를 넘었고 이같은 과잉통화상태가 지속, 소비자물가는 사실상 두자리로 뛰었으며 일부지역의 아파트와 땅값이 불과 몇개월사이에 수직상승해 2∼3배로 오르는 투기열풍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던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2단계 금리자유화를 단행하면서『실물경기가 불붙기전이 적기』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호황의 뒤끝인 88년과 달리 아직 경기회복의 가닥을 제대로 잡지 못한채 갈팡질팡하고 있는 침체상태의 경기가 금리자유화에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경기가 활황이면 자금수요도 왕성, 금리를 규제에서 풀어 자유화할 경우 금리수준이 크게 오를텐데 때마침 경기부진으로 기업이나 가계의 자금수요가 미미하기 때문에 자유화하더라도 금리가 크게 오르지 않을것이라는 설명이다. 경기국면에 기초한 정부의 이러한 적기론은 타당성이 있어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2단계 금리자유화를 단행하게 되는 동기의 실체는 아니다.
개방경제체제로 가는 이행과정에서 어쩔 도리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론이나 미국과의 통상관계상 밀려서 한다는 외압론이 실은 자유화의 실질적인 동기인것이다.
불가피론이나 외압론이 여건의 불비를 눈감아주거나 부작용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88년의 상황을 다시 살펴보면 명백히「금리자유화- 금리상승- 통화방출- 물가불안 증폭」이라는 악순환의 길을 걸었다.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할 가능성은 지금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악순환의 고리중에서 우선 끊어져야 하는것은 금리상승을 이유로 한 무분별한 통화방출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정부는 이미 자유화돼있는 금리를 또 자유화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88년 자유화한 금리를 정부가 다시 묶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순전히 형식에 그치고 만 말만의「자유화」를 위해 그때 우리 경제가 치른 희생은 너무나 큰것이었다. 이번에 정부가 또 금리를 자유화한다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시 걱정을 하고 있다. 쓸데없이 금리만 올리고 물가를 올리고 투기를 일으키고 그리고 금리는 다시 규제상태로 돌아가고…그래서 무얼 위해, 무엇때문에 금리를「자유화」했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는것이다. 하필 금리를 내려야 할 시기에, 그것도 대폭 인하해야 할 시기에 금리상승이 불가피한 자유화를 단행하고 안그래도 통화과잉으로 내년도 물가가 크게 우려되고 있는 시기에 대폭적인 통화방출을 전제로 한 금리자유화를 단행하는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있다.【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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