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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총리/최상룡(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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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총리/최상룡(한국논단)

입력
199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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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는 우연적인 계기도 많지만 필연적인 귀절 또한 적지 않다. 김영삼대통령, 클린턴대통령 그리고 호소카와총리의 등장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역사의 흐름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냉전시대 말미를 장식했던 전두환, 레이건, 나카소네의 콤비와 비교해 보면 그 성격이 더욱 선명하리라. 이념과 힘의 세계적인 조직화로 이어졌던 반세기 동안의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이제 세계는 냉전에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인류는 세계질서를 밑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이나 효과적인 힘의 균형체제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혼돈속에서도 불안과 함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채 냉전의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나아가야 하는 벅찬 과제를 안고 있다. 이제 이들 세 지도자는 때로는 탈냉전·평화의 기수로서, 때로는 개혁의 동지로서 군사적 동맹보다는 평화를 위한 연대를 과시하며 새로운 세계질서, 동북아 질서를 주도해 나아가야 할것이다.

 그런데 세사람의 등장 후 지금까지 미일, 한미간에는 수뇌회담이 있었지만 한일간에는 만남의 기회가 없었다. 이번 호소카와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일 3수뇌들 간에 교감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소문에 의하면 호소카와총리의 방한결정은 관료수준의 일상적 정책결정이나 측근의 자문을 받아들인 결과가 아니라 총리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새 시대, 개혁시대의 일본총리가 아시아의 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한 이상, 우리로서는 그의 정치철학이나 역사관에 대해 일말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우리는 호소카와총리가 일본 역사상 전례 없는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주목한다. 각종 여론조사는 75%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데 그 원인은 청결 이미지, 합리적 사고, 그리고 무로마치(실정) 초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6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천가 18대 후예로서 몸에 밴 품위를 들고 있다. 전후 일본정치사에서 청결한 정치인이 없었던것은 아니나 청결만으로는 집권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한때 「깨끗한 삼목」으로 통했던 미키 다케오가 총리가 된것은 청결과 무관한 파벌역학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일본 국민은 38년간의 자민당 장기집권하에서 쌓였던 부패구조의 베일이 하나하나 벗겨짐에 따라 더 이상 자민당을 택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과거 자민당 정권이 가졌던 요인을 전혀 가지지 않은것만으로도 엄청난 장점이 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선 위주의 연공서열로 총리와 요직을 안배하는것에 식상해 있던 일본 국민의 눈에는 중의원 초선인 호소카와총리의 등장이 오히려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을것이다. 물론 그의 총리 지명도 8개의 군소정파간 미묘한 힘의 균형이 산물이긴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총리로 선택된 데에는 반부패의 시대정신에 걸맞는 그 특유의 청결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고 개혁내각의 상징으로서도 유효했기 때문이다. 호소카와총리는 그의 저서 「권불십년」에서 지도자의 5개조건을 열거하고 있다. 첫째는 무사로 앞을 내다보려면 사심이 없어야 하고 둘째, 사명감으로 이는 대단한 자기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신은 그러한 자질이 부족하다고 술회하고 있다. 셋째, 시심이라는 독특한 말을 사용하면서 말을 바꾸면 낭만이나 실천적 이상주의라고 했고 넷째,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으로 력사감각을 들고 있다. 그리고 다섯째, 사물에 대한 거리감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일종의 균형감각으로 흑백이 분법을 거부하는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릴때 부모의 강요에 의해 읽긴 했지만 지금도 논어 맹자등 동양고전에 대한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고 나폴레옹의 전략에서 케네디의 「멋」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정치인으로부터도 많은것을 배운것으로 알려져있다.

 그 다음 호소카와 총리는 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언명함으로써 그의 역사관 내지 아시아 인식의 일단을 피력한 바 있다. 이 발언 또한 주위의 자문에 의한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역사적 판단이라고 한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자명한것을 얘기했을 뿐이나 역대 일본총리로부터는 처음 나온 말이기에 일본국내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는 역대 일본 지도자들의 망언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고 교묘한 어법으로 과거 역사를 묘사하는 일본지도층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호소카와총리의 역사인식에 남다른 면모를 발견한다.

 일본의 논단에서는 호소카와총리의 가치관이나 행동양식을 두고 「고집센 합리주의」 「부드러운 공포정치」라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큰 소리로 명령은 하지 않으나 자기가 결정한것을 무섭게 관철시키는 성격의 소유자라는것이다. 어떤 역사가는 호소카와총리를 6백년 이상을 언제나 권력 가까이 있으면서 전란과 음모로 점철되는 격동의 시대를 정확한 정세판단으로 살아 남아온 세천가의 기적을 이은 정치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제 며칠 후면 바로 그 호소카와총리가 한국을 방문한다. 지난날 우리 국민은 이 시대의 정치적 거인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방문때 보인 참회의 눈물을 보고 역사의 무게와 함께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멋을 발견한 바 있다. 뜻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호소카와총리의 「시심」과 「력사감각」속에서 브란트수상의 철학과 역사관에 일맥상통하는 품격을 보고자 할것이다. 이러한 가슴 터놓는 대화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 대통령과 일본총리 두분이 의미있는 미래구상을 해주길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고려대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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