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증가 년째 성장율 상회/갈곳없는 자금 투기열풍 소지 기업의 설비투자가 꽁꽁 얼어붙어 있는 가운데 소비는 늘고 있고 저축은 줄고 있다. 소비는 토끼걸음인데 저축과 투자는 거북걸음이다. 89년이후 시작된 이같은 왜곡현상은 올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30돌을 맞은 저축의 날(10월26일)이 무색할 정도다.
26일 경제기획원 재무부 한은등 관계당국에 따르면 민간소비증가율은 89년이후 연속 5년째 경제성장률을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또 국내총저축률이 90년이후 연속 4년째 국내총투자율을 밑돌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저축률이 투자율보다 낮고 소비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소위 「선진국흉내내기병」이 장기화되고 있는것이다.
국내총저축률은 89년만해도 35.3%로 국내총투자율(33.5%)을 1.8%포인트 상회했다. 저축률과 투자율이 역전된것은 6공중반인 90년이다. 국내총저축률이 90년 36.0%로 국내투자율(37.1%)보다 처진후 재역전이 안된 상태에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총저축률이 총투자율보다 낮다는 얘기는 국내에서 투자자금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고 해외자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민간소비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넘어서기 시작한것도 저축률과 투자율이 역적된 비슷한 시점이다. 88년까지만 해도 경제성장률(12.4%)이 민간소비증가율(9.8%)보다 높았다.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인 89년 민간소비증가율(10.9%)과 성장률(6.8%)이 역전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금년상반기만해도 민간소비증가율이 5.2%인데 비해 성장률은 3.8%밖에 안된다.
관계당국에서는 금년에도 총저축률이 총투자율을 밑돌고 민간소비증가율이 성장률을 넘어설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저축, 투자, 소비」라는 경제활동의 3각점을 잇는 자금흐름의 왜곡현상이 4∼5년째 지속되고 있는것이다.
저축이 넘쳐 자금이 남아돌고, 이 결과 금리가 아주 낮은 일본 대만등 경쟁국들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의 시장금리수준은 지난해 14.3%에 달했으나 대만은 6.8%, 일본은 4.6%로 우리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다시말해 국내기업은 일본 대만의 기업보다 2∼3배 높은 금리를 부담하고 있는것이다. 국내기업은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2∼3개 찬 상태에서 경쟁을 하고 있으니 결과는 뻔할 수밖에 없다.
저축하지 않고 소비부터 하는 분위기는 금융실명제실시이후 눈에 뛰게 두드러지고 있다. 주로 중산층이 이용하고 있는 대도시 백화점들이 전반적인 불경기속에서도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또 일부 특급호텔과 고급레스토랑도 뜻하지 않은 실명제특수를 누리고 있다. 공직자들의 골프장출입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전국각지의 골프장은 휴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만원이다. 승용차신형모델은 최장 3개월, 지프는 5개월씩 출고가 밀려 있다. 자동차업계는 9월 한달동안 총13만3천4백16대를 팔아, 월중 내수판매의 신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새로운 모델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형세탁기는 내년부터 특소세가 적용됨에따라 백화점점포에서 평상시보다 10배이상씩 팔리고 있고 팬히터 가습기 전기장판등 겨울용품은 평상시의 8배수준, 40∼50%씩 할인판매하는 추동숙녀의류매출도 역시 보통때의 10배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해 헤매던 부동자금이 고급소비재쪽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산층을 중심으로 「저축기피, 소비선호」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것이다.
부동산시장도 심상치 않다. 아직은 거래가 활발하지 않지만 한번 불붙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투기열풍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 갈곳없는 자금이 당국의 감시가 비교적 허술한 부동산에 몰릴것이라는 지적이다. 김관영박사(한국개발연구원)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지금의 소비풍조는 오래 가지 않을것』이라며 『멀지않아 상가등 부동산에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저축추진중앙위원회가 이달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향후의 저축감소요인으로 응답자의 38%가 부동산등 실물투기를, 29%가 소비성향증가를 들었다. 강력한 저축유인책이 시행되지 않는 한 저축률이 투자율을 따라잡기 어렵고 민간소비증가율도 경제성장률을 앞서기 힘들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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