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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14주/박찬식(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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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14주/박찬식(화요칼럼)

입력
1993.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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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이는 어떤 경주에서나 이기게 돼있다. 사람들은 약자가 승리하는 얘기를 듣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카메룬에도 그런 민담이 있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내기를 하기로 하고 날짜를 정했다. 토끼는 자신만만했으므로 준비할 일도 없었다. 그러나 거북이는 친구들 집을 일일이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결전의 날이 왔다. 아침 일찍 일어난 거북이는 친구들을 불러 모은 후, 달리기를 하기로 약속한 길가 숲속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숨어 있도록 했다. 달리기가 시작됐다. 토끼는 여유있게 출발했다. 한참을 뛰고 나서 거북이가 어느만큼 왔나 뒤돌아 보니 놀랍게도 거북이는 바로 등 뒤에 쫓아오고 있었다. 당황해서 속도를 올려 달리기 시작한 토끼는 도중에 돌아볼 때마다 바로 뒤를 쫓아오는 거북이의 모습에 놀라 나중에는 있는 힘을 다 해 달렸다. 토끼는 마침내 결승점을 눈 앞에 두고 쓰러졌다. 거북이가 이긴 것이다.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이므로 변칙적인 방법에 의한 연대가 명분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기를 공정하게 하기위해 거북이를 가령 10 앞에서 출발시킨다면 이번에는 전략을 모의할 것도 없이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다. 토끼가 거북이보다 10배가 빠르다면, 토끼가 10를 달려 거북이의 출발점에 도달할 때 거북이는 1를 앞서 나갈 것이고, 토끼가 그 1를 따라잡을 때 거북이는 다시 10㎝ 앞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토끼는 결승점에 도달할 때까지 결코 거북이를 앞설 수 없게 된다.

 그럴듯 하지만 절대로 그럴 리가 없기때문에 사람들은 잠시 혼란에 빠진다. 운동의 연속성을 생각지 않고 단락을 지어 설명하려는데서 이런 엉뚱한 논리의 모순이 도출된다. 역사도 운동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일정 시점에 맞추어 역사의 흐름을 끊어서 해석하고 합리화하려할 때 모순이 발생한다. 그 역사의 해석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때 그것은 사회적 모순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79년 10월26일의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역시 그 시점에서 새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전에 부마사태가 있었고, 그것은 김영삼 당시 신민당총재에 대한 의원직 제명처리가 도화선이 됐으며, 유신독재에 대한 국민적인 반대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물론 그 앞에는 4·19혁명을 훔친 5·16군사쿠데타가 있었다.

 혁명은 영웅을 만들어 내고 전장에는 장군이 있지만 역사의 흐름은 개인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중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정부가 규정한 것처럼 4·19로부터 오늘의 문민정부까지 30여년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자유민주를 추구하는 시민정신이다. 누구도 이 흐름을 바꿀 수 없었다. 다만 역사의 진행을 유예시킬 수 있었을 뿐이다.

 4·19와 10·26과 6·10시민항쟁을 훔친 자들은 역사의 흐름을 단절하고 그때마다 그 단락 위에 그들의 새 공화국을 세웠다. 그리고 도적을 구국의 영웅으로 추대하는 모순된 논리를 만들어 냈다. 불공정한 게임의 논리가 지배하는 모순의 사회가 한세대가 넘게 계속된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만연돼 있는 무질서와 권위의 추락은 이 사회적 모순이 그 원인이다.

 너무 오랫동안 가치관이 전도된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사리를 분별할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지도층 중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민자당의 한 의원은 얼마전 재산공개때 당의 징계에 대해『자본주의 국가에서 열심히 일해 돈 버는 것이 무슨 죄가 되는가』라고 항변했다. 그러나「돈 버는 일」은 사업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자본주의 국가 아니라 어떤 사회에서도 돈 벌자고 정치인이 되는 사람을 용납할 곳은 없다.  정치인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기위해 스스로 나선 볼런티어(자원봉사자)다. 볼런티어의 조건은 사랑과 봉사정신이다. 문민시대의 정치개혁은 국민을 사랑할 줄 아는 정치인들이 모여 볼런티어로서 그들의 이상을 펴볼 수 있도록 하자는데 그 뜻이 있다. 사리를 지키기위해 역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가짜 정치인이 배제되고 볼런티어들이 이끌어 가는 정계의 대 개편이 있어야한다. 모든 시민과 일선 공무원이 흔쾌히 함께 참여하는「신바람 나는 사회」는 그때서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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