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수난시대/임시직급증… 선진국 취업새풍속도/군살빼기에 중간관리직 찬밥 신세 「화이트 칼라」수난시대가 닥쳐오고 있다. 전세계에 불어닥친 최악의 경기침체로 미국 유럽의 일류기업들이 앞다투어 경영혁신·구조조정작업에 나서면서 과거 중간관리계층인 화이트 칼라가 설자리를 잃어가고 신규채용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로 가는 중간단계인 중간관리층을 겨냥, 인사 재무관리 마케팅등 기업경영관련학과를 나온 소위 엘리트대학졸업생에게 「할일이 없다」는 심리가 확산돼 선진국의 취업풍속도는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이같은 현상은 미국과 일본, 유럽등 대륙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노동통계국에 의하면 관리직종의 실업자가 최근 몇달새 급증하면서 실업자의 41%가 중간관리직 종사자였던것으로 밝혀졌다.
유럽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내 각분야의 관리자를 양성하는 경영대학원의 하나인 ISG를 지난 6월 졸업한 모니에씨(25)는 지금까지 대형자동차회사에서부터 소화물배달회사에 이르기까지 수십군데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동안 엘리트 대우를 받아온 그로서는 수모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화이트칼라를 줄이는 판에 실무경험도 없는 그를 채용하겠다는 기업은 나서지 않았다. 천신만고끝에 최근 조그만 아동복메이커의 관리직에 들어간 그는 『이력서의 사진을 컬러로 쓸 경우 개성이 너무 부각될것같아 흑백사진으로 바꾸었고 면접때도 말을 크게 조심했다』고 고백했다. 화이트 칼라의 가치폭락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지만 엘리트대학졸업생에 대한 특별대우등 과거의 취업관행이 크게 변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최근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난 선진국의 취업풍속도는 앞으로의 가능성보다는 실무경험을 중시하는 풍조이다. 실업률이 10.6%(실업자 1천7백만명수준)에 이르는 유럽공동체(EC)의 경우, 신입사원의 채용보다는 실무경험을 지닌 유경험자를 우대하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는것이다. 구미선진국에 인턴사원제가 어느정도 정착되어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예전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이 때문에 우선 손쉬운 임시직으로 취업, 일단 실무경험을 쌓은뒤 경험과 능력을 발휘할 수있는 기업체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려는 엘리트졸업생들이 크게 늘었다. 모니에씨의 ISG 출신동급생 10명가운데 4명이 단기고용상태에 있고 2명은 임시직을 얻기위해 뛰고 있다. 이는 기업에 신입사원과 같은 임금으로 기존의 사원과 같은 인재를 뽑는 효과를 안겨준다.
또다른 현상은 실무분야의 세분화와 계약기간의 단축이다. 기술이나 경영기법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 기술 및 실무경험사이클이 짧아지면서 기업들은 필요한 부분에 즉시투입할 수있는 「즉시전력감」을 선호하고 있다. 뉴욕에서 기업경영자문을 맡고 있는 페이스 팝콘씨는 『미국의 기업들은 지금 아무리 최신기술이라도 앞으로 10년후면 낡은 기술로 변해 쓸모없게 된다는 판단아래 길어야 10년정도를 내다보고 사람을 뽑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이후는 또다른 능력이나 기술을 가진 인재를 뽑아 쓸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기술의 메카로 알려진 실리콘밸리의 일부 전자업계에서는 신규인력을 채용하기전에 현재 갖고 있는 기술은 수년내에 쓸모없게 될것이라며 새로운 기술혁신아이디어를 내지못할 경우 재계약은 어려울것이라고 통보하는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의 이러한 고용심리는 고정인건비를 줄이고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에 적합한 인물을 찾아 쓸수 있도록 임시직을 선호하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다. 기업과 취업희망자간을 연결해주는 임시직알선업체나 인재탱크가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는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미국내 기업의 기술연구소와 과학자를 중재해주는 과학전문알선업체인 템퍼러리 헬프 인드스트리는 올들어 기업의 추천요청이 부쩍 늘어나 추천자의 능력과 대우에 따른 등급을 대폭 늘렸다. 시간당 9달러의 초보과학자들로부터 시간당 35달러(연봉 약5만6천달러상당)에 이르기까지 능력과 대우별로 세분화시킨것이다.
유럽각국정부도 기업이 노동자를 좀더 싼값에 쓰고 쉽게 해고할 수있도록 해주기위해 애쓰고 있다. 노동법이 특히 엄격한 스페인의 경우 기업들은 언제든지 쉽게 해고할 수있는 임시직을 선호해 현재 취업인구의 3분의 1이 임시직이다. 프랑스정부도 주당39시간으로 규정되어있는 근로시간을 연간기준으로 바꿔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기업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동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종신고용제가 정착되어있는 일본의 기업들도 변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대기업인 신일본제철은 화이트 칼라로 분류되는 관리부문의 약1만여종사자를 향후 3년동안 3천명정도 줄일 예정이다. 여기에는 관리직 신입사원의 선발축소도 포함되어 있다. 엔고로 급속히 경쟁력이 떨어진데 따른 자구책이다.
특히 전자업체 후지쓰는 올해 취업계획에서 전문대 및 고졸출신 사무직선발을 중지하고 대졸사무직도 대폭 줄일 방침이다. 꼭 필요할 경우 단기고용이나 계약직을 뽑아 충당할것으로 알려졌다. 종신고용제로 세계최고의 노동생산성을 기록한 일본으로서는 획기적인 취업풍토변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이 신입사원 모집인원을 대거 축소함으로써 본격적인 취업시즌을 앞두고 대학 지도교수로부터 취업추천서를 받으려는 졸업예정자들간의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이러한 변화는 전후최대의 실업난에서 비롯됐다. EC의 평균실업률은 10.6%수준이지만 프랑스는 11.7%(약 3백20만명)에 이르고 스페인은 무려 21.3%나 된다. 일본은 7월말현재 2.5%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지만 지난해보다 0.3%포인트 늘어난것이고 현추세가 계속될 경우 내년에는 3%수준으로 오를것이란 전망이다.
이에따라 경영난을 타개하려는 기업들의 감량경영원칙과 취업희망자들의 무조건취업 우선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지고 있는 선진국의 새로운 취업풍토는 급격한 경기회복조짐이 나타나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것으로 보인다.【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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