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개편·전당대회 앞둔 포석”/꼬리무는 설… 힘겨루기 징후도 개혁한파속에서 채 빙하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자당내부에 조금씩 꿈틀거림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김영삼대통령의 주도적인 정국운영으로 인해 아직도 침체상태에 놓여있기는 하지만 서서히 본연의 정치적 모습을 드러낼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것이다. 당내의 각 계파 중진들도 이에 발맞춰 「두꺼운 얼음」밑에서나마 점차 각개약진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우선 김종필대표와 김윤환 최형우 이한동 황명수의원, 김덕롱정무장관, 서석재전의원등 이제까지 이러저러한 이유로 활동을 자제해왔거나 또는 움직일 여건이 못됐던 중진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있다. 옛날처럼 사람들을 끌어모아 단체로 움직이는 계보적인 활동은 아니더라도 중진인사들의 동시다발적인행동들이 눈에 뛰게 두드러지고 있는것은 사실이다.
이와 함께 갑자기 당내외에 「말」이 많아진것도 역시 같은 징후로 볼 수 있다. 지난 12일 국정감사장에서 터져나와 파문이 계속되고 있는 유성환의원의 「김윤환의원 전력시비발언」은 밖으로 불거져나온 한 예에 불과하다.민자당내에는 얼마전부터 출처와 진위여부가 확인되지않은 각종 설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모의원이 조만간 당무위원으로 정치일선에 복귀할 것이다』 『내년전당대회에서 누구는 당대표, 누구는 총리를 맡기로 역할분담에 관한 합의가 끝나있다』 『민주계의 모인사는 서울시장을 노리고 뛰고 있다』 『누구는 지금은 비록 장외에 있지만 연말쯤에는 중책이 주어진다』라는등의 얘기가 국정감사로 바쁜 와중에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있다.
이같은 민자당안팎의 변화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연말께 있을것으로 예상되는 개각 또는 당정개편, 나아가 내년 5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그 원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위해 아니면 혹 벌어질지도 모를 힘겨루기에 대비한 물밑행보가 시작됐다는것이다.
김종필대표는 당내 제2인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새정부출범 이후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지내온게 사실이다. 당개혁문제나 재산공개파문, 선거법개정문제등에 있어서 자신의 의사가 그다지 반영되지 않는데 대해 상당히 서운해한나머지 한때 「다른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금융실명제 보완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당의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되면서부터는 달라졌다는게 중론이다. 상대적으로 위상이 높아진데다 개혁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낀 상당수 인사들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했다는것이다. 지난달 9일 박관용청와대비서실장등 청와대수석비서관들과 저녁을 같이한것을 비롯해 정치권뿐만아니라 외부인사들과도 활발한 의견교환의 장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서해훼리호침몰참사때 호된 목소리로 관련자들을 질책하는등 명실상부한 2인자로서의 자리를 굳히려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포착된다. 김대표 측근들은 『당을 「배제의 논리」가 아닌 「화합의 논리」로 끌어가려는 대통령의 의중을 김대표가 계속되는 주례회동에서 확인한것같다』면서 『때문에 주변에서 아무리 말을 많이해도 당내화합을 위해서는 내년 전당대회에서 김대표의 위치에는 변함이 없을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민주계 중진인 최형우의원도 최근 부지런해졌다. 지난봄 중국방문이후 민정계 중진들과 연쇄적으로 만나 당내화합을 소리높여 강조했다가 「의도」를 둘러싼 구설수에 휘말려 여름동안은 「과외공부」를 하며 조용히 지내왔다. 그러다 지난 6일 연세대경영대학원 여성고위경영자과정을 시작으로, 14일에는 ROTC예비역중앙회이사회에서 「개혁강연」을 하는등 12월초까지 강연일정이 빽빽이 짜여있다. 또 23일에는 TV토크쇼에 나가는등 한편으로 개혁을 전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에게 지면을 넓혀가고 있다. 본인은 『그냥 순수하게 보아달라』고 말하지만 여의도의 개인사무실에 적지않은 브레인을 두고 있는 그를 「욕심없는 사람」으로 보는 이는 별로 없다.
김윤환의원은 여전히 『내가 나설 때가 아니다』는 태도로 가급적 조용히 움직이는 모습을 계속하고 있다. 대구동을보궐선거를 돕거나 한일의원연맹 일에 열중하는등 계보성모임은 거의 갖지 않고 대신 주어진 일만 하는 굴곡없는 태도를 견지하고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내년 전당대회문제가 화제에 오르면 『이제 대표는 민정계가 말아야한다』고 말하는등 다소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유성환의원이 공개적으로 자신을 공격해와도 『그건 그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며 애써 못본체 하는등 민주계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자세이다.
같은 민정계이면서도 이한동의원의 행보는 김의원과 다소 차이가 있다. 새정부출범이후 조용히 있었지만 민정계중에서는 누구보다도 먼저 「개혁에의 동참」을 외치고 나섰고 많은 강연을 자청, 「개혁전도사」역을 자처하고있다. 지난달부터는 주로 당외를 중심으로 각 분야 인사들과 접촉을 부쩍 늘려 당내에서는 『요즘 이한동의원이 열심히 뛰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반면 김덕롱정무장관은 「어떻게 하면 남의 눈에 뛰지 않을까」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것같다. 지난봄 『15대 총선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것』이라고 말해 당내에 물갈이파문을 일으키는등 개혁의 총아로 떠오르게 되자 필사적으로 자기를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장관은 최근 한시사주간지 여론조사가 자신을 「다음 세대의 유망주」로 꼽자 『얼마나 더 조용히 지내야 나를 그냥 놔둘까』라고 자탄조로 말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중진들의 움직임과 함께 당내 기류도 과거와는 다른 흐름을 보여 주고있다. 계파간의 알력 못지않게 계파내의 감정대립이 표면화되는것도 그중 하나이다. 이로인해 사안에 따라서는 계파간의 벽을 넘어 민정·민주계 인사들이 이해를 같이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당내에는 『민정계의 중진인사들끼리, 민주계의 중진인사들끼리 점차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벽이 쌓여가고 있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이는 민자당의 앞날에 중요한 변수가 될수도 있는 대목이다.【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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