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선 선장생존설 보도 좀더 신중했어야/인권보호 소홀한 사회체질 개선 앞장기대 독자의 수가 신문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좋은」신문은 사건의 주변에 둘러쳐진 여러 겹의 베일을 하나하나 벗겨 가면서 진상을 밝히려는 기자와 선정주의를 견제하는 현명한 독자의 공동작품이다. 무조건 남보다 먼저 특종을 차지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정보를 가공하고 포장하는 기자 혼자만으로는 좋은 신문을 제조해 낼 수 없다. 기자의 신중한 탐정가 기질을 소중히 여기고 그의 이야기를 사주는 독자가 있어야 신문은 살아나는 것이다.
독재의 시대를 거치면서 다시 태어나는 작금의 우리 언론을 보면 상당히 성장한 민주역량을 한 눈에 볼 수있다. 가히 언론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해진 정보사회내에서 신문은 다양한 신종상품을 선보이며 정보에 대한 다양한 갈증을 풀어주고 대화거리를 제공한다.
한국일보도 예외는 아니다. 문민정부의 지난 행적을 살펴보거나 실명제 개혁의 허와 실을 진단하는 특별기획시리즈에서 국정과 관련한 「큰 이야기」와 일상적 삶에 대한 「작은 이야기」를 조화시켜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나름대로의 노력을 보였다.
역시 신문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날 때 신문다울 수 있는것이다. 아울러 시장 지분을 넓히려는 신문사의 경쟁심리와 「얄팍한 상술」보다 더 확실하게 무소부지한 국가의 행보를 감시하고 권력의 무분별한 행사를 견제하는 것은 없다. 언론은 시장경쟁에서 자기 혁신의 동기를 발견한다.
그렇지만 전국을 뒤흔든 서해 훼리호 사건에 대한 우리 언론의 취재활동을 살펴보면 한가닥 아쉬움이 남는다. 시신 인양과정에서 검찰과 언론에 의해 졸지에 「생존 잠적자」가 되어버린 백선장과 6인의 선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생존여부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검찰의 지명수배가 전국에 내려지고 신문지상이 추측보도로 연일 뒤덮임으로써 선원과 그가족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한국일보는「생존설」로 보도,타신문에 비해 다소 신중한 입장을 취했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실 생각하면 취재경쟁과정에서 신빙성없는 제보에 놀아난 검찰과 언론과 독자의「경솔함」은 단순히 기술적인 실수가 아니다.그것은 인권의 절대성과 프라이버시의 존엄성을 아직 절감해 본 적 없는 우리사회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언어의 폭력이다. 기술적 경솔함은 우발적이기보다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우리사회의 문화적 체질 때문에 빚어질 수 밖에 없는「필연적 실수」다.
그러나 오보가 발행부수를 늘리고 손익을 맞추어야 하는 자본주의 언론내에 언제나 잠재하는 과잉경쟁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아울러 기사의 시장성을 쫓는 신문사에 사회적 책임의식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이상론에 공감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에 대한 언론의 책임을 역설하는 이상론은 거대한 권력에 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을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서해훼리호 사건에 대한 취재경쟁은 국가에 의한 통제보다 언론사 자체에 의한 차별화가 절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절대다수의 신문과 방송매체가 동일한 예단하에 기사를 작성할 때 「청개구리」처럼 반대방향을 바라보면서 남다른 상상력을 발휘하고 정보를 가공하는 신문이 하루빨리 등장해야 하는 것이다.
권력앞에서는 강하지만 개개 시민의 인권은 존중하는 언론, 남이 서쪽을 향해 달려갈 때 자신은 동쪽을 바라보는 언론. 그러한 위상을 한국일보가 개척한다면 이미 선진화의 문턱에 선 한국언론의 미래는 더욱 밝아지고 양질의 독자층은 한층 두터워질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