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진통」이 또다시 시작됐다. 양곡유통위원회가 쌀수매량을 9백50만∼1천만섬으로 하고 수매가를 9∼11% 인상해야 한다고 정부측에 건의하자 경제기획원이 즉각 「수용 불가」방침을 공표한것이다. 기획원은 한술 더 떠 수매량을 지난해(9백60만섬)보다 60만섬 감축하고 수매가를 동결시키겠다는 강경입장이다. 농민단체들의 대반격이 예상되고 있다. 추곡수매가 동결조치는 5공초인 83년에 단 한차례 있었다. 국회동의절차가 남아 있어 정부안이 관철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정부 스스로 추곡수매가 동결방침을 발표한것은 꼭 10년만의 일이다. 추곡수매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그런 만큼 정책결정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금년도 추곡수매정책결정이 과연 이런 원칙에서 이루어졌는지 한번 따져봐야 할것 같다. 기획원은 금년도 추곡수매방안이 포함된 내년도 예산안을 지난 9월 23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해 놓고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숨기고 있었다. 농림수산부가 사전동의해 준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획원은 민자당과의 당정협의도 거쳤다. 대통령도 예산안에 서명했다. 정부는 이미 9월중순에 추곡수매량과 수매가를 확정했는데 양곡유통위는 꼭 한달뒤인 23일 정부당국에 추곡수매방안을 건의한것이다. 뒷북도 보통 뒷북이 아니다. 기획원은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며 『국회에서 수매량을 늘리거나 수매가를 올리면 몰라도 정부로서는 예산안수정이 불가능하다』고 버티고 있다. 정부자문기구인 유통위의 꼴이 아주 우습게 됐다. 또 유통위의 건의를 토대로 추곡수매를 결정하겠다던 정부당국자들의 말은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농민들은 「국회몫」을 기대할지 모르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 추곡수매자금의 주된 재원인 양곡증권발행이 내년부터 중단된다. 내년부터는 수매자금이 정부예산에서 직접 지원된다. 국회가 추곡수매자금을 추가확보하려면 다른 부문의 예산을 깎든지 추경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양곡증권을 손쉽게 발행하던 때와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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