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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룡 교수 일본정국 탐방(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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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룡 교수 일본정국 탐방(특별기고)

입력
1993.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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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국 일본은 어디로 갈것인가/호소카와 개혁목표 “정당정치 자립”/핵포함 군사대국화 지향엔 견해차/“한국주도로 한반도 통일” 공감대/상호존중 바탕 한·일협력시대로 대학에서 일본정치론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오늘날의 일본정치는 정말 흥미롭다. 지금까지의 일본정치는 따분하리만큼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민당정권 붕괴 후의 일본정국은 그야말로 불확실성 투성이다. 일본은 반부패·개혁의 시대정신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경제대국 일본은 어디로 갈것인가. 그 일본이 한반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호소카와 정권은 새로운 한일관계에 걸맞는 파트너가 될 수 있는가. 필자는 최근 변화하는 일본정국을 현장에서 진단해보기 위해 2주일간의 일본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여행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먼저 현 일본의 정치사회의 변화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몇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두 차례의 연구발표회와 일본의 고위급 정치인과의 면담을 실시했다. 우선 쟁점들로는 ▲일본의 정치개혁의 특징과 목적 ▲핵을 포함한 군사화에 대한 일본인의 견해 ▲일본의 북한에 대한 단중기적 예측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일본의 태도 ▲새로운 한일관계에 대한 전망등을 생각했다. 그리고 학자·언론인·정치인 등 1백여명이 참석한 「정치개혁」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기조보고를 했고 일본의 북한전문가들과의 학술회의에도 발표및 토론에 참여했다. 이번 면담에 쾌히 응해 준 주요 정치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도이(토정다하자)중의원의장 고노(하야양평)자민당총재 하타(우전자)현부총리겸 외무장관(신생당대표) 야마하나(산화정부)정치개혁담당장관(전사회당위원장) 에다(강전오월)과학기술청장관 고토다(후등전정청)자민당의원(전부총리) 가노(녹야도언)자민당의원(전농림부장관) 스가(하도인)중의원 외무위원장 구보(구보긍)사회당서기장 다나카(전중수정) 사키가케파 대표대리와 이외 뉴웨이브소속 전현직의원 30여명.

▷일 정치개혁◁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 정면으로 도전하는 세력은 없다. 지난 80년대 이래 리크루트사건, 좌천급편의혹등 수많은 부패사건은 40여년 계속된 자민당의 일당지배체제가 부패의 극에 달했음을 말해준다. 의원내각체제에서 여당이 장기집권함으로써 여당의 정치가가 행정기관에서의 여러가지 이익분배와 이해조정의 과정에 개입하게 되고 그래서 정치가와 감독관청 그리고 업계와의 3각형의 부패구조가 형성되었던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정치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관료정치로부터 정당정치의 자립을 획득하는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중앙정부의 관료기구는 정책의 입안뿐만 아니라 각종 인허가의 업무에 이르기까지 관리함으로써 부패의 온상이 되었던것이 사실이다. 엘리트의 충원과정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와 같이 유능한 인재가 모두 관료가 되는 구조를 바꾸어 정당정치에 인재가 몰리도록 제도를 개선하여 의욕과 능력이 있는 인재가 쉽게 정치의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거의 합의에 도달하고 있는 주된 개혁 이 바로 소선거구제와 비례투표를 병행하는 것과 기업으로부터의 헌금을 폐지하는것등이다. 호소카와 연립내각은 늦어도 11월 중순까지 이들 정치개혁을 단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군국화 노선◁

 그 다음 일본의 핵무장을 포함한 군사대국화의 가능성에 대해서 책임있는 정치인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최근 한국의 논단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금후의 일본은 핵을 포함한 군사대국노선으로 나아갈것으로 본다.

 그런데 필자가 만난 일본정치인은 좌에서 우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예견할 수 있는 장래에 일본은 핵을 가지지 않을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들의 논거인즉 인류사상 최초의 원폭피해국민으로서 아직은 엄청난 핵알레르기를 가지고 있고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국론을 이분할 수 있는 핵무장을 할 필요도 없고 의지도 없다는것이다. 핵문제에 관한 한 한·일간의 인식의 갭은 메우기 어려울 정도로 큰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의견이 현실에 가장 가까운 것일까. 전후 역대 일본정부가 전쟁포기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9조를 자의적으로 해석한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연립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당소속의 각료마저 아직도 자위대 위헌론을 공언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근대사의 경험에서 보면 경제대국은 예외없이 군사대국이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측의 통념과 우려도 일정한 근거를 가진다. 그리고 핵무장을 하지 않을것이라고 한 일본의 정치인들도 핵을 만들 수 있는 권리마저 포기한것은 아니고 다만 미국의 핵억지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핵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효용론을 제기한다. 그리고 최근 PKO 논의에서 보듯이 이 문제가 설령 핵무기와는 성질을 달리한다고 하더라도 불과 2년 전만 해도 자민당 우파 사람들까지도 PKO파견에 유보적이었는데 반해 지금은 사회당까지도 대부분이 PKO의 존재이유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봤을때 현단계에서 일본이 핵무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는 장차 핵무장이 주요한 쟁점이 될 수도 있을것이다. 「장황에의 의존」은 일본인의 행동양식을 설명하는 중대한 잣대가 되어 왔다. 이와 같은 상황의 변화는 이를테면 북한이 핵을 가질 경우라든가 미국의 핵억지력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경우일 것이다. 일본의 진로와 관련하여 큰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것이 바로 오자와(소택일랑)씨가 제기한 이른바 「보통국가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통」은 결코 상도 하도 아닌 중급수준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의 군사화를 의미하며 따라서 「보통국가」라는 이름의 군사대국의 형성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자와씨는 일본의 진로에 대해 자기의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는 정치인으로 부패이미지와 함께 「오자와 신화」도 같이 가지고 있는 실력자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사고방식은 어디까지나 국가를 중심축으로 보기 때문에 신국가주의란 비판도 있고 미·일중심의 세계질서 형성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아시아음치」란 비판도 있으나 그의 아시아 인식의 결여를 두고 앵글로 색슨적 사고의 소유자라는 평가도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일본의 군사화를 군국주의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는것은 적절치 않다는 점이다. 현시점에서 일본에는 사상이나 운동 내지 체제로서의 군국주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군사대국화가 자동적으로 군국주의를 수반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핵무장을 주장했던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우파정치인도 지금은 그러한 주장을 자제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의견은 아직도 평균적 일본인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오자와씨의 미래구상에 대해서 제1야당인 자민당내에선 비판이 거세다.

 고토다(후등전정청)의원과 그의 지명으로 당총재에 오른 고노(하야양평)씨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일본의 보수적인 젊은 지도자들의 아시아인식이 결여되고 있고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둔감하다고 날카롭게 비판한 원로정치인 고토다씨의 품격은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을것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자기의 권력욕을 자제하고 유능한 후배에게 흔연히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대인정치인이 한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대북한 예측◁

 그 다음 북한의 정국에 대한 일본인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보기로 하자. 북한경제를 전공하고 있는 고마키(소목휘남)씨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경제는 앞으로 2, 3년을 견디기가 어려우며 지금도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해 있다는것이다. 금후 북한의 변화와 관련하여 3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는데 ①북한정권 및 사회의 급격한 붕괴 ②북한에 고르바초프와 같은 지도자가 등장하여 개방과 개혁을 주도하는 경우 ③김부자의 정권은 붕괴해도 북한사회는 유지되는 경우등이다. 일본의 북한전문가의 대부분은 급격한 붕괴 가능성을 조심스럽고도 심각하게 진단하고 있고 그 시기도 5년까지 길게 잡을 수 없다고 한것은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것은 종래 북한에 대해 지속적으로 호의를 갖고 있던 일본의 좌파인사들이 거의 예외없이 금후 2, 3년간의 북한의 장래를 지극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분석이 의미있는것이라고 봤을 때 우리가 서둘러야할 당면과제는 통일방안의 절충으로 시간을 보낼것이 아니라 의외로 빨리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통일, 그것도 엄청난 혼돈을 수반할 통일과정을 조직적으로 준비하는것이다. 설령 「루마니아형」을 예측하는 이들의 분석이 적절치 않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공통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점진적인 평화공존의 축적과 그 연장선 위에 있는 협상에 의한 통일의 가능성이 대단히 희박하다는 점이다.

▷한반도 통일◁

 이와 관련하여 현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한반도통일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많은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 대부분은 한반도의 통일을 가장 바라지 않을 나라로 일본을 꼽고 있다.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는 통일된 한국이 강한 나라로 부각하는것을 내심 경계하는 일본사람이 많다고 본다. 그런데 정작 일본의 정치인이나 여론지도자들은 통일된 한국이 일본에 우호적인 나라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일본인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북한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달성되리라고 보았다. 공산화된 한국이 일본에 적대적임은 불을 보듯 뻔하고 그러한 상황을 일본이 바라지 않을것은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80년대 이후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한반도의 통일에서 어떤 형태로든 남한이 우위를 확보할것이라는 점은 이제 일본인에게도 상식처럼 돼버렸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을 무조건 경계한다는 우리들의 고정관념도 어느 정도 수정을 필요로 한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후 그렇게도 많은 사람과 물건의 교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간의 국민수준의 이미지는 크게 개선된 점이 없다. 만약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통일과정에 도움이 된다는것이 7천만 우리국민의 실감에 와 닿으면, 그때야말로 우리국민의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엄청나게 개선되리라고 본다. 금후 일본의 정치지도자 가운데 일본의 국가이익에 반하지 않은 범위내에서 한반도의 통일과정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구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일우호의 관계사에서 길이 남을 인물이 될 것이다.

▷새 한일관계◁

 마지막으로 한일관계의 개선에 한가닥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지금까지의 한일 양국은 미국을 주축으로 한 냉전체제에 편입되어 반공의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정부수준의 비정상적 유착과 국민수준의 해묵은 갈등이 평행선을 걸어왔으며 상당한 기간 국민의 「반일」에너지가 정부의 「반공」정책에 의해 제지당한 적도 있었다. 이제 그 냉전체제의 중심축이 붕괴되고 한일간의 정치세력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우선 한국에서는 과거의 군사권위주의 정권을 극복한 문민정부가 수립됐고 일본도 38년간의 자민당 일당지배가 무너지고 개혁세력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정권이 등장했다. 정권담당세력도 50대를 주축으로 하는 전후교육을 받은 세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제 한일 양국은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새로운 협력시대를 창조해나가야 할 필요성을 다같이 절실히 느끼고 있다. 폐쇄적인 유착시대의 「뜨거움」보다는 쌍방의 국가이익을 인정하는 합리적인 협력단계에서 나타나는 「차가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정부든 국민이든 금후의 한일관계는 「유착없는 우정」의 시대로 이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 꼭 하나 덧붙일것은 오랜 우리의 고정관념 즉 한국과 일본은 같은 유교문화권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동질성의 신화를 버리고 한국인과 일본인은 행동양식과 가치관이 크게 다르고 정치문화나 경제발전의 단계와 특징이 다르다는 관점 즉 이질성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선택적으로 상호의존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할것이다. 

 우리의 극일 콤플렉스도 일본의 혐한 감정도 시야를 넓혀 미래의 지구시대를 살아가려는 우리에게는 이미 호소력이 없다. 중요한것은 일본이 외국으로 인식한 최초의 나라가 조선이란 점, 한국에 있어서 더욱이 다가올 통일한국의 미래에 있어서 일본은 정치경제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외국이라는 점을 상호인식하고 그야말로 정상적인 양국관계를 열어나가야 할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김영삼정부와 일본의 호소카와 내각의 만남은 신선한 출발이 될 수 있을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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