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새로운 말을 찾아 헤매는 까닭은 그저 교양스러운 취미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펼쳐지는 온갖 만물의 움직임과 성격을 더욱 정확하게 그리고 감정에 맞게 표현하려는 노력 때문이라 하겠다. 종종 무언가 색다르게 표현해야 할 충동을 느끼면서도 그저 상투적인 한계에 머무르고 마는것은 기존의 낱말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어 자료를 적절히 응용을 못하는 까닭이 더욱 크다. 오래도록 관객을 모으고 있는 영화 「서편제」를 보면 잊었던 전통 음악의 참 맛을 새삼 느끼게 된다. 게다가 남도 지방의 정경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고귀한 선물을 참으로 오랫동안 잊고 지냈구나 하는 자기 반성도 일으켜 준다. 특히 앞부분의 장면에서 잠시 나온 푸르디 푸른 맑은 바닷물의 출렁임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영화의 대본이 된 소설을 읽어 보면 이렇게 반짝이는 바다 물결을 무척 아름다운 낱말로 표현했다. 작가 이청준씨는 출렁이는 물결에 햇빛이 비쳐 반짝거리는것을 「물비늘」이라고 일컫고 있다. 과연 이 말을 그 분이 처음 발명한것인지의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른 글이나 사전 따위에서는 아직 전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누구든지 「비늘」이라고 하면 으레 생선을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비릿비릿한 냄새가 코끝에 느껴지는 듯할것이다. 아니면 뱀의 징그러운 껍질 정도가 연상되기 쉽다. 여간해서는 그 비늘의 반짝임으로부터 아름다운 정경을 나타낼 비유의 실마리를 찾아 내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하찮아 보이는 말도 특별한 정황에 적절히 사용하면 의외의 절묘한 표현을 살려 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될것이다.
바닷가에서 멀리 수평선 쪽으로 눈길을 던지면 물의 출렁임은 여축없이 생선 따위의 비늘처럼 햇빛에 반사되며 무리져 반짝인다. 이것을 별빛 같다고 하거나 반딧불 같다고 해 보았자 오히려 어두운 밤하늘이 연상되기만 할 뿐이다. 이것을 물비늘이라고 일컫게 되면서 물결의 반짝임, 바닷가의 갯냄새 등이 정서적으로 다가오는것을 쉽게 받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영화나 좋은 책을 접할 때마다 무언가 새롭고 더 나은 표현이 없을까 하고 추구하는 자세는 자칫 형식에 치우치기 쉬운 또 한번의 한글날 행사보다 천배 만배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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