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위주 획일수업 탈피할때”/지식주입식 교수방법 과감히 개선/예절·품성 등 공부도 함께 가르쳐야 사회가 변하면 교육도 따라서 변해야 한다. 그러나 광복후 우리사회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는데도 교육은 사회의 변화속도를 따라잡지 못한채 언제나 뒤 처져 왔다.
아직도 대도시에 남아 있는 콩나물교실, 낡은 학교건물과 시설등 학부모들이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게 없다.
겉모습만 낙후된 게 아니다. 교육과정도 몇십년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관찰과 실험,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줄기차게 강조돼 왔지만 여전히 대다수 국민학교의 수업은 교과서와 칠판, 백묵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선 국민학교에서도 자탄의 소리가 높다. 『교사들은 「교과서내용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진도에 맞춰 모든 단원을 소화해내지 못하면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기 일쑤이다. 교과서분량을 과감히 줄여야 한다』―서울 불광국교 이형직교감의 지적이다.
「어린이고민 상담실」운영으로 유명한 서울석관국교 차원재교장은 예절과 품성교육의 실종을 꼬집는다.
『핵가족과 맞벌이부부가 가족형태의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원래 가정에서 이루어졌던 예절교육이 학교의 몫이 됐다. 하지만 젊은 부모들의 과잉보호 속에서 버릇없게 자란 아이들을 예절 바르게 교육시키기에는 학교 자체가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우선 신세대교사들 스스로 생활예절을 전혀 모른다. 그렇다고 교과서를 통해 생활예절을 체득할 수도 없다. 예절교육이 제대로 되기 위해선 도덕교과서는 그야말로 큰 틀을 제시하는 「공자님 말씀」정도의 참고자료로 삼고 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국민학교교육이 이런 모습을 하게 된 원인의 하나로는 그동안의 교육철학빈약과 외국 교육과정의 무분별한 도입을 간과할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 구남웅장학사는 60년대초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뒤진데 자극받은 미국이 실생활중심으로 돼있던 교육과정을 고도의 학문중심으로 개편한것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이 여파가 일본을 거쳐 10년쯤 뒤인 73년 우리나라에까지 밀려와 3차 교육과정 개정때 대학에서나 배우던 집합,위상수학이 국민학교 산수에 포함되는등 전반적인 교과내용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그 결과 교사들이 참고서를 보고 공부하고 학부모들이 학원에 나가는 소동이 벌어졌으며 학생들도 갑자기 어려워진 교과서를 따라잡지 못해 애를 먹게 됐다.
교육부가 마련, 고시하는 교육과정은 「학교교육의 설계도」이다.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육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동일한 교육내용을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획일적으로 주입하는 「소품종다량생산」체제로 설계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교육기회의 평등 요구를 형식적으로 충족시켰지만 모든것이 교육부―시·도교육청―학교로 이어지는 종선(종선)을 따라 일방적으로 지시되는 「단선형 교육」체계를 고착화시켰다.
그러나 사회전반의 민주화, 분권화, 지역화 추세의 영향으로 일선 교육현장에선 오래전부터 변화의 요구와 징후가 꿈틀돼 왔다. 특히 단선적인 교육과정을 지양, 「다품종소량생산」식의 특성있는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논산군의 두마국교는 학과성적 우수자에게만 우등상을 주는게 아니라 체육, 글짓기, 붓글씨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에게도 상장을 주는 「성취장 제도」를 실시, 잠재력을 개발하고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제주의 신제주국교는 90년부터 대학의 학기말 리포트작성과 비슷한 「1인 1탐구활동」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4·5학년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이 과목은 「제주도사투리에 대한 조사」 「우리고장의 관광지에 대한 조사」 「우리집 금붕어의 생태관찰」등 학생들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교사나 부모의 도움을 받아 한 학기동안 조사한 결과를 논문형태로 정리,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서울서래국교는 시험날짜를 따로 정하지 않고 수시로 시험을 치르는데 「조회시간에 학생대표가 한 얘기를 요약하고 의견을 제시하라」는등 독특한 문제를 낸다. 서울 강남 8학군의 량전국교는 89년 개교이래 지금까지 줄곧 주관식으로만 시험문제를 출제해 오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교육전문가들로부터 발표력이 왕성하고 작문력과 분석·비판력이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 대체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고시돼 95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될 제6차 교육과정 개정안은 이처럼 일부 국교에서 자생적으로 일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을 교육계 전반으로 확산,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21세기를 주도할,건강하고 자주적이며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한국인의 육성」을 목표로 2년여의 작업끝에 마련된 6차 교육과정개정안의 가장 큰 특징은 ▲기본생활습관의 체질화 및 예절교육 강화 ▲교육과정운영에 관한 시·도교육청및 학교의 재량권 대폭 확대등이다. 6차 교육과정개정안은 지식교육에 밀려나 있는 품성·예절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종전의 5차례 교육과정 개정에 비해 사회의 전반적 변화와 학문의 발전추이를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
이 설계도대로 새로운 교육은 창출될 수 있을까. 교육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교과서 만능주의, 지시일변도의 교육행정등 일선 교육현장과 교육관료집단에 만연된 타성의 타파,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교교육과정 어떻게 변화돼왔나/54년부터 6차례에 걸쳐 학문중심 개정/건전한 심신 등 전인육성 기대엔 못미쳐
국민학교 교육과정은 54년의 1차부터 95년이후 단계적으로 적용되는 6차에 이르기까지 6차례 바뀌었지만 광복직후 발표된「신조선의 조선인을 위한 교육방침」과 46년 고시된 「교수요목」까지 포함하면 8차례 변화를 겪은 셈이다.
특히 집권세력의 이데올로기등 교육외적인 요소에 의해 교육과정의 개정여부와 내용이 결정된것이 문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조선의 조선인을 위한 교육방침 및 각급학교 교과목·주당 교수 시수표(45년)=일제 말기의 심상(심상)소학교 교과목 및 수업시간표를 바탕으로 작성된것이지만 교육내용에선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수신(수신)과목을 없애고 새로운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취지에서 공민과목을 신설했으며 일제 황민화교육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국사과목을 개설했다.
◇교수요목(46∼54년)=새로운 민주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미군정청 편수관들이 서둘러 제정했다. 종래의 공민·역사·지리·실업·자연관찰을 통합,사회생활과를 만들고 교과마다 중요한 주제를 제시한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급하게 제정돼 내용이 지나치게 어렵고 교과간 연관성도 약했다.
◇1차 교육과정(54∼63년)=경험과 실생활을 강조하는 생활중심 교육과 전쟁 직후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도의교육을 강조, 학년마다 연간 35시간의 도덕시간을 확보토록 하고 「쓸모있는 직업인 양성」을 위해 실과를 중시했다.
◇2차 교육과정(63∼73년)=경제개발의 영향으로 실생활교육이 더욱 강화됐다. 또 5·16이후 반공이 국시로 표명됨에 따라 반공·도덕과목이 신설됐다. 교육과정 공표당시 주당 1시간이던 반공·도덕은 7개월뒤 2시간으로 늘어났다.
◇3차 교육과정(73∼81년)=국민교육헌장에 바탕한「국적있는 교육」을 표방했지만 60년대 미국에서 대두된 고도의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도입, 대학과정의 내용을 집어넣는등 지나치게 어렵게 교과서를 개편, 부작용이 빚어졌다.반공·도덕의 이름이 다시 도덕으로 바뀌었다.
◇4차 교육과정(81∼87년)=5공 출범후의 교육개혁조치를 염두에 두고 개정됐다. 교과목수를 축소하고 4개이던 특별활동영역을 3개로 줄였으며 1·2학년의 경우 교과통합을 추진했다. 국민정신교육의 체계화,전인교육의 충실, 과학·기술교육 강화에 역점을 두고 건전한 심신육성, 지력과 기술 배양, 도덕적인 인격의 형성, 민족공동체 의식의 고양을 강조했다.
◇5차 교육과정(87∼94년)=자율화 개방화 정보화 국제화로 상징되는 21세기를 주도할 주체적이고 창조적이며 도덕적인 한국인을 기르고 다가올 복지국가건설과 조국통일에 대비하는 미래지향적인 교육을 목표로 설정했다. 특징으로는 ▲말하기 듣기 읽기 셈하기등 기초교육 강화 ▲환경 경제 컴퓨터교육 강화 ▲특별활동 강화 ▲장애아를 위한 특별학급 편성등을 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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