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가 어제 슬롯머신 폐지안을 돌연 보류시켰다고 한다. 우선 할일이 태산같은 이때 국무회의가 왜 그런 뒤집기 결정을 내렸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정부 스스로가 슬롯머신업소 완전폐쇄결단을 내린게 불과 4개월여전인 6월2일이었다. 그때 정부당국자가 밝힌 결단의 배경설명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슬롯머신업소가 그동안 승률조작·탈법을 일삼고 폭력조직의 자금원이 되는등 선량한 풍속·건전한 청소년환경의 조성및 신한국건설이념에 배치돼 전면 폐쇄키로 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외화획득과 관광진흥이란 본래 취지도 내국인중심 영업과 탈법·탈세로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정부측 설명이 아울러 있었다.
그랬던 정부가 이제와서 또다시 외국관광객유치에 필요하다는등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달아 보류결정을 내렸다니 국민 누구나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무게가 실려야할 정부결단이 과연 이처럼 「그네질」을 해도 되는것인지 묻고싶다. 아울러 슬롯머신 비리자체의 죄질과 그 척결의 상징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구시대 구조적 비리의 표본으로 사정의 도마위에 가장 먼저 올랐던게 슬롯머신 비리였다. 따라서 이 사건 처리결과야 말로 새 시대의 사정의지를 사실상 가늠해주는 바로미터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수사초기부터 정부의 사정의지는 국민적 기대에 훨씬 못미쳤다. 지탄받아야 할 구조적 비리의 주범중 한명을 불구속입건으로 오히려 보호해가며, 그 주범의 진술에 매달려 수사를 펴는 본말전도의 수사행태를 보였다. 그래서 업소비리못지않게 국민적 관심을 모은 거물급 비호세력소탕과 지분소지자 밝히기에서도 박철언의원·이건개전고검장·엄삼탁전병무청장등 10명이 구속되고 11명이 불구속입건되었지만 표적수사·한정수사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더 이상의 거물 정치권 비호세력으로는 수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고, 지분소유자를 밝혀내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때문에 수사과정에서 이미 훼손되기 시작했던 사정의지는 최근의 박·이씨 재판과정에서 법정소란을 낳고 봐주기의혹등의 구설로 이어지면서 그 훼손의 정도가 더욱 깊어진 감이 없지않았다. 그런데 또다시 모처럼의 폐쇄결단마저 뒤집기에 이르렀으니 당초의 서슬 푸르렀던 사정의지를 어디서 찾겠는가.
지금이 어느 때인가. 땅과 하늘과 바다에서 대참사가 이어졌고, 총력을 기울인 경제되살리기는 아직도 힘겹기만 한데 한가하게 슬롯머신을 되살릴 궁리나 하고있을 시점은 분명 아닐것이다. 외국관광객유치명분이 또 나왔다지만 주한 미군영내의 슬롯머신까지 내국인들이 점령해 말썽이 되고있는게 오늘의 현실임을 벌써 잊지는 않았을것이다.
생각해보면 득될게 하나없는 슬롯머신업소들이다. 국민여론은 카지노수사마저 어물쩍 넘어갔다는 것인데, 이제와서 슬롯머신을 되살려 얻을건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