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직원 결탁땐 “무책”/일선창구 탈법감시 사실상 불가능/“빙산의 일각” 제2사건 속출할수도 실명제에 뚫린 큰 구멍이 실체를 드러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말들이 현실로 나타난것이다. 충남방적 자금담당간부들의 불법인출사건으로 가명계좌의 변칙실명확인과 차명계좌의 불법실명전환등 실명제 초반부터 금융가에 떠돌았던 「큰손들의 실명제 탈출작전」이 결국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일부에서는 『큰고기는 다 빠져나가고 피라미들만 걸린것이 아니냐』는 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2개월간의 실명전환기간을 통해 가명계좌의 96%가 실명전환을 마쳤고 총실명확인율도 80%에 달했다. 정부는 『많은 검은돈들이 실명제의 대세를 따른것 같다. 실명제의 첫출발은 일단 성공적』이란 평가를 내렸다.
외견상 실명화실적은 양호한것으로 보이지만 20조∼3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차명계좌의 실명전환율은 계좌수기준 0.23%(27만5천8백계좌), 금액으로는 0.85%(2조9천2백47억원)에 불과해 많은 사람들의 의혹을 자아냈다. 차명계좌에 숨어있던 상당수 큰손들은 실명제그물을 무사히 탈출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무성했고 이는 결국 충남방적 사건으로 어느정도 입증된것이다.
은행감독원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변칙실명화 사례 자체보다 충남방적의 경우처럼 사건화되지 않으면 결코 드러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금융기관직원의 묵인만 있으면 변칙적인 실명전환 및 확인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것이다.
구속된 고려증권 상봉지점장의 경우 지난 6월 고객 7명의 이름으로 된 도명계좌를 개설, 충남방적 간부들에게 공금횡령의 길을 터주었고 실명제 이후에는 원래 계좌주인의 위임장과 출금전표까지 위조해 불법으로 실명전환을 시켜 주었다. 또 동화은행 종로5가 지점 대리는 8월초 8개의 가명계좌를 개설해 준뒤 실명제가 실시되자 충남방적 간부들이 가져온 도장과 주민등록번호만으로 변칙실명전환을 해줬으며 국세청 명단통보대상인 「순인출 3천만원한도」규정을 피하기 위해 2천9백만원씩 돈을 쪼개서 내줬다.
결국 ▲도명계좌의 불법실명전환 ▲계좌주의 동의없는 출금전표위조 ▲가명계좌의 변칙실명전환등 세간에 떠돌았던 변칙사례들이 이번 사건에서 모두 드러난 셈이다. 단일사건에 이같은 많은 변칙방법들이 동원된것을 감안하면 명의대여인의 동의아래 차명계좌를 그대로 실명화했거나 가·차명계좌를 또다른 차명계좌로 전환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것으로 금융계는 추정하고 있다.
금융계는 그러나 『현행 실명제 긴급명령으로는 고객과 금융기관직원의 결탁아래서 이뤄지는 불법적인 명의변경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실명전환기간동안 감독당국과 각 금융기관이 일선영업점에 「실명화 철저」를 줄곧 지시했지만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탈법행위들을 일일이 감시할 수는 없다는것이다.
동화은행 관계자는 『자주 거래하던 대기업 자금담당계장과 과장이 이 회사 부회장과 상무의 도장과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며 실명전환을 요청하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특히 실제예금주가 확실할 경우 명의인의 동행이나 위임장없이도 실명화가 가능하다는 지침이 발표된 바 있어 굳이 복잡한 확인절차가 필요없었다는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지점관계자도 『실명제이후 거래기업들이 평소 가·차명으로 관리하던 비자금을 법인 또는 간부명의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들이 직접 오지 않아도 문제를 삼지 않았다』라고 말해 대기업 및 큰손고객에 관한한 실명확인 및 전환이 「법대로」진행될수는 없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두달간의 실명화기간동안 위장분산된 대기업 주식들과 비자금의 실명화실적이 예상보다 미미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을것으로 보인다.
결국 96년으로 예정된 종합과세시행전까지 현행 실명제 긴급명령으로는 충남방적사건과 같은 변칙실명화는 어쩔 수 없는 허점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변칙방법으로 실명전환했던 가·차명계좌들은 무사히 남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제2,제3의 충남방적사건이 속출할 수도 있다는것이 금융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선량한 소시민들만 겁먹게하고 번거롭게 하는 실명제라는 말이 지나친 말이라고 하기도 어렵게 됐다.【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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