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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모의문화와 질투의문화/이인호(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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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모의문화와 질투의문화/이인호(한국논단)

입력
199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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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여러가지 전시물 가운데 그 나라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것 중의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때 독일의 공군 명수 로젠백작이 탔던 소형 비행기이다. 연합군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그의 비행기를 호주 공군이 드디어 격추시켰는데, 그것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그 비행기의 잔해를 바다 건너 호주로 실어왔을 정도로 감격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관람객을 정말 탄복시키는 전시물은 그 비행기가 아니라 그 옆에 전시되어 있는 작은 장례식 사진이다. 호주의 공군이 그 많은 자기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독일의 공군명수에게 군인으로서의 명예로운 장례식을 치러주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호주 군인들의 유가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로젠백작은 원수였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호주 국민은 그가 일단 죽자 그를 적이기에 앞서 훌륭하게 살다간 한 군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높이 평가하고 그에게 맞는 장례식을 치러준 것이었다.

 로젠백작에 대한 이러한 후한 대우는 독일인에게 힘과 긍지를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독일인들은 아마도 그러한 전시물이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을것이다. 그러한 전시물들을 보면서 격려를 받아 자기들도 로젠과 같은 훌륭한 군인이 되어 자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는것은 독일인들이 아니라 바로 호주의 미래 로젠들이며, 호주라는 나라는 적장의 명성까지를 자기 국민을 정신적으로 살찌게 만드는 교훈으로 전용하는 지혜를 보이고 있는것이다.

 전쟁에서의 적수는 고사하고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불행을 당하는 이웃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또 반대로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해도 훌륭한 일을 해 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평가 태도는 어떠한가. 침몰한 여객선이 인양되어 시신들이 절반이나마 확인되기도 전에 도주한 선장과 승무원들부터 잡으라고 아우성치던 부끄러운 분위기는 비단 언론기관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경쟁의식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의 의도를 좋게 보다는 나쁘게 보려는 사회 전체의 병든 분위기가 그러한 히스테리 증세로 노출된것 뿐이었다.

 인간이 사는사회에는 어느 시대 어느곳에도 경쟁과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 경쟁은 관리하기에 따라서 갈등을 낳기 보다 발전의 동력이 되며, 피비린내 나는 투쟁과 갈등은 자유 경쟁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합리적 사고와 행동의 단련이 잘되어 있지 못한 원시 사회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경쟁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생산적 양상으로 전개되느냐 아니면 인간관계를 험악하게 만들어 결국 삶 그 자체를 해치는 파괴적 양상으로 전개되느냐는 경쟁의 치열 정도가 아니라 경쟁이 무엇을 바탕으로 하며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진선미에 대한 객관적 척도가 수립되고 좋은것에 대한 선망과 남의 훌륭함에 대한 흠모가 경쟁심의 동력이 될 때 그러한 경쟁은 선의의 경쟁이 되고 생산적이 되지만, 남이 가진것이나 성취한것에 대한 질투가 그에 대한 흠모를 압도할 때 경쟁은 파괴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사회는 살만한 곳이 못되기에 이르고 만다.

 과장된 이야기이기를 바라지만 요즘 국민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 예쁜 아이, 잘 사는 아이가 인기를 누리기 보다는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분명한것은 아이들이 어른들을 우습게 보며 고등학교나 대학생들 사이에서 존경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인물들을 찾아 보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에게 존경을 받을 만한 민족의 지도자들이 각 분야에서 배출되지 못한것을 서글퍼하며 우리의 역사를 탓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좋은것이 있어도 좋은것으로 볼줄 모르며 남에게서 장점보다는 단점만 끌어내려하는 사회분위기 그 자체이다.

 자기에 대해서는 엄격하되 남을 평가함에는 관대하며, 나와 남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최선을 다했는가 못했는가를 따지는 태도가 경쟁의 동력이 될 때 우리사회는 비로소 선진적 문민사회가 될 수 있을것이다.

 공직 사회와 사회지도층의 비리를 척결하는 방법으로 재산등록과 공개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그 일로 말미암아 부정을 저지름이 없이 노력과 능력으로 많은것을 성취한 사람들까지도 질시의 대상이 되는 사회풍토가 조성된다면 잃은것이 얻은것보다도 더 큰 불행이 빚어질 수도 있다. 질투의 문화를 흠모의 문화로 대치하느냐 못하느냐는 이제 우리 민족의 존망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하다.【서울대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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