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구제를 위해서는 불가의 사찰이 민가 가까이 서는것이 좋고, 수행자의 깨달음을 위해서는 고요한 산중에 있는것이 좋다. 경주와 부여등 옛 도읍의 중심에 있던 절터를 보면 본래 불가와 민가는 구분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화엄사와 송광사등 큰 절을 가면 깊숙한 골짜기가 수도자의 도량으로 걸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을 세운 성리학자들은 민가와 더불어 어울려 있던 절을 산으로 밀어냈다. 척불정책의 결과이다. 지금 역사가 깊은 큰 절은 대개 산중에 있는 까닭에 우리는 절과 산을 떼어내서 보지 않는다.
산사에 바람이 불면 골짜기 멀리까지 은은히 퍼져나가는 소리가 있다. 노랫말에도 나오는 그윽한 풍경소리다.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 처마에 매달린 이 청동풍경은 사찰의 높은 품격을 전한다. 날카로운 쇳소리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고 물소리와도 잘 어우러져 화음을 이룬다. 대웅전 앞 뜰을 거닐면서 들을 땐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을 준다.
풍경은 풍령 또는 풍탁이라고도 부르며 법당이나 불탑의 처마에 매달아 놓아 소리가 나도록 한 장엄구이다. 풍경의 방울에는 물고기 모양의 금속판을 매달아 둔다. 수도의 길에 들어선 이는 물고기처럼 언제나 깨어서 수행해야 한다는 경계의 표시이다. 아주 작은 범종의 형태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소리에서 한국의 멋이 풍겨 나온다.【최성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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