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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만델라­데 클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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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만델라­데 클레르크

입력
199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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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전인종 총선실시에 합의/수세기 인종격리정책 철폐 주역 올 노벨평화상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경쟁끝에 주인을 결정했다. 그렇지만 최종선정 단계에선 심사위원들간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그만큼 넬슨 만델라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과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남아공대통령은 이 상의 주인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다.

 두 사람은 막강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영예를 안았다. 이들 이외에도 25개단체와 94명의 개인이 수상후보 대열에 서 있었다. 그중에서도 구세군은 가장 강력한 상대였다.

 89년 이후 노벨상위원회는 줄곧 인권과 민주의 어깨를 추스려 주는데 힘을 기울여 왔다. 조국을 중국에 뺏긴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 보수파 공산주의자에 맞서 싸웠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전소련대통령, 미얀마군부에 연금된 아웅산 수지, 군사정권에 분연히 대항했던 과테말라의 인디언 인권운동가 리고 베르타 멘추….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델라와 데 클레르크는 지난 수세기 동안 이 나라 흑인들의 삶을 무겁게 짓눌러온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철폐의 주역이다. 민주와 인권신장에의 기여란 측면에서 최근 4년간의 평화상 수상자들과 가장 가까이 서 있었다.

 만델라는 75년의 생애를 불꽃처럼 살아 왔다. 법률가로서, 아마추어 권투선수로서, 게릴라로서, 정치지도자로서 흑인인권신장을 위해 끝없는 투쟁을 해왔다. 91년 7월 ANC의장에 선출된 후 ANC를 이끌면서 데 클레르크와 함께 전인종이 참여하는 민주총선실시 합의를 이루어 냈다. 가장 강력한 차기 남아공대통령후보이기도 하다.

 90년 2월 27년만에 만델라를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게 해준 사람은 데 클레르크(57)였다. 89년9월 대통령 취임당시만 해도 인종격리정책을 지속시켜나갈 충성스런 집권국민당원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던 데 클레르크는 각종 흑인 반체제단체 합법화, 인종차별체제 철폐, 흑인들과의 권력공유등의 「충격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이나라 국민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흑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려 애썼다.

 데 클레르크대통령은 변호사로 일하다 72년 국민당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으며 교육장관(84년)을 역임한 데 이어 89년2월 국민당 당수가 됐다.【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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