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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국행 포로 28명/거제수용소서 회한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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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국행 포로 28명/거제수용소서 회한의 눈물

입력
199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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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맺힌 옛터찾아 “왜 떠나야했는지…” 탄식 6·25전쟁후 제3국을 택했던 북한군포로 28명이 40년만에  조국을 스스로 등지게했고 불안에 떨며 목숨을 이어 가던 한(한)의 현장인 거제포로수용소를 찾았다.

 15일 상오 시가지와 논 조선소로 바뀐 경남 거제군 신현읍 옛 포로수용소 터와 거제군 고현리 고현중학교앞 수용소 유적관에 들러 당시 군복 버너 식기 소총 유품과 전쟁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며 이들은 쓰라림과 회한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52년초 수용소내 공산세력권인 66군관 장교수용소를 탈출했던 「내가 겪은 조선전쟁」의 저자 주영복씨(69·미국거주)는 핍박받았던 포로시절의 괴로움과 조국을 배반한 죄의식을 감추지 못했다.

 수용소를 두번 옮겼다는 김시봉씨(65·브라질 거주)는 『한 쪽에서는 소리높여 김일성을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반공을 부르짖었다』며 도대체 내가 이나라에서 무슨 꿈을 가질수 있는가라는 회의에서 제3국을 택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유적관에서 전쟁기록 비디오를 본 남창진씨(63·브라질거주)는 『두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는데 다시 오게 됐다』며 감회의 눈물을 흘렸다.

 무도장 PX 미군막사 경비대막사등을 돌아본 이준희씨(57·브라질 거주)는 자신이 조성작업에 동원됐던 양정리 양정저수지를 기억했고 평양제일고급중학 학생으로 징집됐던 정주원씨(61·아르헨티나거주·외항선선장)는 『제3국으로 갈까 보다』라고 말했다가 반공포로들에게 처참하게 얻어 맞았던 78수용소자리를 둘러보고 몸서리 쳤다.

 거제군청 기록에 의하면 수용소는 50년11월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3백60만평에 설치돼 51년 2월부터 포로를 수용하기 시작, 한때 17만3천명에 달했으나 휴전과 함께 폐쇄됐다.

 가장 낯익은 곳은 수용소터를 감싸고 있는 해발300의 독봉산. 인공기와 유엔기가 번갈아 게양되던 곳이다.

 이들은 12, 13일 입국하면서 부터 줄곧 『애국가를 불러야되는것 아니냐』 『북한의 가족들은 그들의 신변안전을 위해 묻지 말라』며 거듭 반공과 반김일성을 강조했다.

 초청측인 MBC의 최진용PD(36)는 『이들과 조국중 누가 누구를 배반했겠는가』라며 여운을 남기는 질문을 던졌다.【거제=김병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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