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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고…(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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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고…(장명수칼럼)

입력
199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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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들의 자살사건이 자주 신문에 실리고 있다. 자살한 젊은이들 중에는 어려운 시험을 뚫고 들어간 명문대학의 학생들도 있고, 최근에는 서울대 법대생들의 자살이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워낙 대학입시가 힘들다보니 사람들은 학교이름을 보면서 『공부가 아깝구나』 라고 다시 한번 탄식하곤 한다. 그들이 자살한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의욕상실·실연·질병·좌절·정서장애·진로에 대한 중압감등 여러 이유들을 상상할수 있지만, 그들이 주변의 짐작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 고민하다가 죽음을 택했을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일류대학의 학생들이 어떤 중압감을 못이겨 자살했으리라고 짐작되는 예가 벌써 여러번 있었다면, 이문제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공부잘하는 학생들이 보통학생들보다 더 큰 기대를 모으는것은 당연하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때로는 그들이 감당하기 힘든 기대를 보내기도 한다. 또 자기자신이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세워놓고,그 목표를 이루지못해 자책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갈등은 「수재」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것이지만, 그 갈등을 못이겨 자살하기에 이르렀다면, 그 누구에게든 문제가 있었으리라고 가정해볼수 있다. 지나친 기대나 강요로 중압감을 준쪽이 잘못일수도 있고, 중압감을 못이겨 자살로 도피한 쪽이 나약했을수도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렵고 심각한 일중의 하나는 청소년들의 진로를 정하는 일이다. 말로는 이상론을 주장하기 쉽지만, 막상 내자식의 문제가 되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현실을 저울질하면서 기존의 가치에 집착하게 된다. 어떻게든 자녀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서 안정된 직업을 갖게 하겠다는것이 모든 부모들의 목표다. 의사·법관·교수등 구체적인 전문직을 정해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그 직업을 향해 자녀를 몰아가는 부모들도 있다.

 부모의 희망과 자녀의 적성이 일치하는 행복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고교성적이 좋아서 부모가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무난히 합격한 학생들중에도 그 전공에 흥미를 못느껴 방황하는 학생들이 있다. 자신의 소질과 적성은 무엇이며, 소질을 살려 한평생 일하려면 어떤 분야로 가야 하는지, 검토해볼 겨를도 없이 입시준비에 시달려온 많은 학생들은 전공을 선택한후 고민에 빠지고 있다. 우리의 경직된 교육제도는 이런 학생들의 방황을 고려하지 않고, 학생들은 진로를 바꿀수있는 출구를 찾기 어렵다.

 학생들의 진로선택을 생각하면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라는 기업인 김우중씨의 책제목이 떠오른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다른 책의 제목도 생각난다. 어떤 특정직업 속에만 의미있는 세상이 있고, 행복이 있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직업이 한정돼 있던 시절에는 「안정된 직업」에 집착할수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먹고살수 있을만큼 산업기반이 든든해지고,다양한 사회가 됐다. 학생도 부모도 학교도 넓은 세계를 보면서 진로를 생각해야 한다. 점수가 아까워 법대에 가고, 법대에 갔으니 사시에 붙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것은 긴 인생, 넓은 세계를 생각할때 어리석기 짝이 없다.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한평생 헌신하는 것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할때, 진로가 더 잘 보일것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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