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쿠르트 발트하임유엔사무총장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통일문제를 중재하겠다고 남북한을 순차방문했다가 크게 낭패를 본적이 있다. ◆1979년 5월2일 발트하임이 보좌관 및 수행기자들과 함께 평양에 도착하자 김일성은 마침 얼마전에 완공된 이태리제대리석과 독일풍의 가구등으로 치장한 화려한 만수대주석궁에서 이들을 환대했다. 김은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등을 주장하며 남북대화가 교착된것은 남측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이틀뒤 서울을 방문한 발트하임을 맞은 박정희대통령은 한국의 평화통일의지를 밝히고 『통일전까지 남북한이 유엔에 함께 가입할 수 있게 저들을 설득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저녁 청와대만찬자리서 모국의 주한대사는 발트하임의 보좌관에게 『유엔은 6·25때 남침한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싸웠는데 어떻게 적을 상대로 중재하겠다는것이냐』고 따지기도 했다. 아무튼 중재를 자신했던 발트하임은 그뒤 사임할때까지 한반도 화해안을 끝내 내지않았다. ◆이듬해인 80년7월18일 미하원외교위의 스티븐 솔라즈아태 소위위원장이 북한을 찾았다. 그를 맞이한 김일성은 『미·중방식처럼 미와 수교하고 싶다』고 추파를 던졌다. 11년후인 91년12월17일 솔라즈가 두번째 평양을 찾자 김은 미군철수를 강조하고 핵개발을 부인하면서도 『미국과 핵협상을 갖고 싶다』고 제의했다. 솔라즈가 두번째 방북에서 「북한의 핵개발」을 확신한뒤 대북제재를 강조하자 북한은 그를 「배신자」 「반우호적 인물」로 낙인찍었다. ◆최근 평양과 서울을 순차 방문한 미하원 개리 애커만위원장의 행각이 한국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있다. 김일성과 만난후 처음 판문점을 넘어 서울에 온 그는 얄팍한 정치 선전쇼를 벌였다. 그는 또 한완상통일원장관과의 약속도 멋대로 파기하는등 무례와 좌충우돌의 행태를 보였다. 뒤늦게 「북의 컴컴한 핵속셈」을 깨달았던 솔라즈가 같은 유태인 출신이고 지역구가 뉴욕시며 후배 아태소위위원장인 애커만의 이런 행태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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