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 “직접봐야” 애태워/한구 떠오를때마다 통곡【위도에서 임시취재반】 서해훼리호 침몰참사발생 3일째인 12일 위도앞 사고해역 「통곡의 바다」엔 새벽6시께부터 해양경찰대의 부산한 무선교신음과 해군함정 구미호 선상의 작업준비소리가 새벽미명과 해무를 가르며 퍼져나갔다.
연일 잠수로 파김치가 된 해경특수구조단 20명과 해군해난구조단 30명, 전날밤 합세한 해군 UDT 요원 30명등이 시신인양작업에 앞서 몸을 덥히느라 구령에 맞춰 준비운동을 한뒤 상오8시35분에야 첫 입수가 시작됐다.
해경특구단원들은 해경소속 1천5백톤급 1501호 선상에서, 해군 해난구조단과 UDT요원들은 2천톤급 구미함에서 잠수장비를 점검한뒤 고무보트를 타고 2백여m 떨어진 주황색 부표가 떠있는 침몰현장으로 이동했다.
시신이나마 찾으려고 전날부터 위도에서 밤을 새운 실종자 가족들은 날이 밝기도전부터 어선과 전세낸 모터보트등에 나눠 타고 현장에 모여 있었다.
가족들은 서로 몸을 의지해 싸늘한 냉기를 참아내며 줄곧 바다만 바라보았다.
잠수요원들이 밤늦게까지 작업해 침몰한 서해훼리호의 객실입구와 구조선을 밧줄로 연결, 시신인양작업은 전날보다 다소 쉽게 진행됐다.
상오9시5분 첫 인양시신이 물위로 떠올랐다. 『1구인양, 40대여자, 신원파악안됨…』 모터보트위의 구조단원이 지휘선에 무선보고를 한 다음 해경소속 258경비정으로 이송했다.
시신을 모아 인근 병원으로 이송하는 258경비정 근처에 모여있던 어선위의 유가족들이 하얀천에 싸인채 선상에 올려지는 시신을 확인키 위해 쓰러지듯이 몰려 들었다.
어느새 인양현장엔 유가족을 태운 어선과 모터보트가 20여대를 넘어섰고 군·경은 『작업에 도움이 안되니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달라』고 부탁했으나 가족들의 귀엔 들릴리 없었다.
인양작업이 더디기 짝이없던 전날과 달리 20분간격으로 시신이 떠올랐다.
6개월전 나이 마흔에 늦결혼한 누나와 매형 윤모씨(전주시 공무원)의 시신을 애타게 찾던 김모씨(34)는 파장금항의 모터보트를 사고당일부터 아예 전세냈다. 김씨는 시신 4구가 인양된 상오10시께 유가족들을 향해 『시신인양이 끝날 때까지 우리가 직접 지켜봐야 한다』며 『누나, 나이들어 시집 가 행복하게 살 줄 알았더니 이게 웬 날벼락이오』라고 통곡했다.
동원된 잠수요원들이 80여명이었지만 이들이 하루동안 잠수할 수 있는 시간은 1인당 평균 1시간 정도인데다 이날부터는 선체인양 준비작업까지 동시 진행돼 구조단도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시신이 인양된것을 기뻐해야 할지, 인양되지 않는것을 기뻐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는 가족들의 피울음도 아랑곳없이 12일 저녁 해는 너무 빨리 수평선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날 위도 치도리에선 이 마을에 살던 서순애(54)송복순씨(40)의 장례식이 유가족 주민등 1백여명의 오열속에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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