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사회비리 관련 발굴기사 드물어/감시기능 강화… 발로뛰는 기자상 기대 텔레비전이 급속히 보급된 이후로 「신문의 위기설」이 간헐적으로 대두되어왔다. 이러한 위기설을 뒷받침하듯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권위지들이 매각되거나 폐간되는 소식을 우리는 접해왔다.
미국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두개이상의 신문을 갖고있는 도시들의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이에대한 대책으로 미국정부가 신문사에 대하여 각종 세제혜택이나 인쇄시설 공유등의 지원책을 채택하여 실시해왔으나 숨이 넘어가는 많은 신문들을 회생시키기에는 역부족임이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 한 세기가 넘도록 지배적인 대중매체로 군림해온 신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암울하기 짝이없는 소식들이다.
무엇이 이렇게 신문을 궁지로 몰아 넣었는가. 우선 쉬운 답으로는 극소 전자공학의 급속한 발달에 힘입어 텔레비전이 세 불리기에 성공한 탓이다. 현대 대중매체들이 거의 예외없이 광고수입을 주요 재원으로 삼는 까닭에 텔레비전이 차지하는 광고의 양만큼 신문은 상대적인 재정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들어 우리나라 일간지의 수입에서 구독료에 대비한 광고수입의 비중이 점점 더 높아지는 추세는 텔레비전의 공세로부터 일간지들을 더욱 취약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있다. 새로 출범할 종합유선방송이 상당액수의 광고를 떼어갈것을 감안하면 신문의 위기는 단순한 「설」이 아닌 심각한 「현실」로 다가올 전망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신문은 취재관행이나 지면편집에서 일대 혁신을 필요로 한다. 우선 일간지들끼리의 근시안적인 경쟁에 집착하기보다는 타매체와의 경쟁구도에 천착하는 거시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바꿔 말하면 타매체에 대하여 신문매체가 갖고있는 비교우위적인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각각의 매체가 그 고유기능을 강화하여 발전할 때 매체환경이 그 전체로서 국민의 정보복지에 기여함은 두말할 나위없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뛰는 텔레비전 기자와의 발싸움에서 맨손으로 뛰는 신문기자가 앞서고 있는가에 의문을 갖게한다. 최근 텔레비전의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폭로주의나 지나친 선정주의로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숨겨진 사실을 발굴해내는데 열심인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비해 서 기자가 뛰어다니면서 발굴해내는 기사를 신문지면에서 찾아보기가 쉽지않다. 출입처에서 떠 먹여주는 기사,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기사가 신문기사의 주종을 이루고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끄집어 낸 정부의 비리와 문제점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 동안 과연 신문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국회가 전담해야 하는가. 덧붙여 그 기능이 일년중 며칠, 일과성적인 국정감사기간에만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면 그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할수 있는가.
신문이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데에 열심이었던 시절에 신문은 「제4부」로 불렸고 신문기자는 「무관의 제왕」으로 불렸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있다. 언론의 기능중의 하나로 사회환경을 감시하는 파수견(Watch Dog)의 기능을 들고있다. 신문이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을 등한시할때 신문은 권력의 애완견(Pet Dog)으로 전락할수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문은 텔레비전 카메라가 도달할수없는 어두운 곳 깊은 곳의 일들을 다룰수 있어야 한다. 신문의 올바른 자리매김이 가능할 때 현재 직면하고있는 위기는 무한한 발전의 계기로 바뀔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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