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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대 국가/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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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대 국가/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북)

입력
1993.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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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령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지난5월에 4권이 나왔다. 수령의 80세 생일에 맞춰 92년에 나온 이 회고록은 1권이 1912년 4월∼30년5월까지의 일들을 다뤘다. 2권은 33년2월까지, 3권은 35년2월까지, 4권은 36년3월의 「조국광복회」대목에서 끝나 있다. 이 회고록을 대충 한번 훑어보면 수령 연구가중 동경대의 와다 하루키(화전춘수·「김일성과 만주항일투쟁」)교수의 추적이 상당히 정확함을 알 수 있다.

 와다 교수는 여지껏 수령의 공식전기(「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전기」 82년간. 「김일성동지 략전」72년간)에서 얼버무렸던 만주에서의 수령의 빨치산활동, 소련88특별여단에서의 역할등을 중국, 소련, 일본의 자료를 통해 회고록이 나오기전에 밝혀냈다. 수령의 회고록과 와다교수의 책을 비교해보면 결국 수령이 좀 부풀리기는 했지만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장이었으며, 적군 대위였음이 드러난다. 결국 수령은 와다교수등 국내외 연구가들의 등쌀에 회고록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느낄수 있다.

 와다 교수의 추적은 왜 이뤄졌을까. 결론은 한곳에 모여 있다. 중국 공산빨치산으로, 소련의 한국진공 특수대원으로 평양에 온 수령은 그의 과거위에 어떤 나라를 세웠는가에 있다.

 와다교수는 결론 내리고 있다. 수령이 70년11월 노동당 제5차 당대회, 80년 10월 6차 당대회후에 완성한것은 유격대 국가라는것이다. 쉽게 말하면 만주에서 데리고 다니던 빨치산 부하들을 거느린 수령이 대장인채로 빨치산 국가를 성립시켰다는 것이다.

 수령은 5차대회에서 항일연군 제2로군 계열이었던 김광협, 이영호, 최민철, 안영, 최기철등을 제거하고 제1로군계열에  있던 빨치산을 당 중앙위원으로 대거선출했다. 정치위원 11명중 9명이 만주빨치산이었고 그중 6명(김일성, 김일, 박성철, 최현, 오진우, 서철)이 1로군계열이었다.

 6차 당대회에서는 정치국위원 19명중 10명이 수령이 속했던 제2군6사, 제2방면군에 속했던 인물로 바뀌어 수령과 관계있는 인간집단으로서 정점에 오르게 된다. 그들은 김일성, 김일(84년사·전부주석), 오진우, 박성철, 최현(82년 사·전인민무력부장), 림춘추(88년사·전부주석) 서철(92년사·전정치국위원), 오백롱(84년사·군사위원) 전문섭, 백학림등이다.

 이때를 정점으로 지도자가 등장하지만 그도 결국 1로군계열, 88여단계 인물에 속한다. 그의 인물의 원천이 빨치산의 아들이며 그외는 자랑할 게 없기 때문이다.

 92년 4월 수령의 80세를 맞아 오히려 수령의 주위는 그가 빨치산의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급이었을 때 전령병이며 소년대원이었던 이들로 둘러싸이게 됐다.

 이때에 북의 정치의 핵인 정치국 상무위위원이며 중앙군사위부위원장인 오진우는 원수로 승진했다. 그는 34년에 수령산하의 왕청5중대 중대원이었다. 또 이때에 37년에 수령이 백두산에서 근거지를 만들었을 때 어린대원이거나 소년련에 속했던 이들은 모두 대장이나 차수가 되었다.

 대원이었던 전문섭대장은 이해에 국가검열위원장이 됐다. 호위총국장인 이을운은 차수로 승진하고 중앙군사위원, 국방위원을 겸하고 있다. 장백현 심곡마을에서 17세로 입대한 이두익도 차수가 되었고 중앙군사위원이다.

 전령병이었던 사회안전부장 백학림은 차수며 중앙군사위원이 됐다. 그는 36년 수령이 마안산에 머물때에 18세 나이로 수령을 찾아왔었다. 수도방위군 사령관이며 중앙군사위원, 국방위원인 주도일차수는 처창즈에서 14세때 아동단원으로 수령을 찾아들었다. 최인덕차수는 92년에 김일성군사종합대학장이 되었다. 그도 20대이전에 수령을 모셨다.

 이해에 상장에서 대장이된 태병렬은 당중앙위원이었으며 40년대에 유격대원이었다. 강건종합군관학교장인 조명선대장은 15세에 장백현에서 입대했다. 만경대혁명 학원장인 김롱연대장은 36년 장백현심곡마을에서 수령을 따랐다. 이들 모두는 수령을 좇아 백두산―북만―하바로프스크까지 빨치산 노릇을 한 이들이다.

 그들이 48년간을 따르던 빨치산 대장이 국가주석, 노동당 총비서,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대원수로 있는 나라에 대장, 차수, 원수지위를 가지고 수령으로 모시고 있는 나라는 분명 유격대 국가다. 또한 빨치산 나라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수령은 회고록 곳곳에서 이들 생존 빨치산들의 이름을 거명하고 에피소드를 곁들이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빨치산의 아들도 빨치산이며, 그의 사후의 국가도 유격대국가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고령의 나이에 기억과 기억을 되살리며 수령과의 인연을 캐내려고 애쓰는것은 지도자와 이들을 연결시키기 위해서일것이다. 『나처럼 내 아들도 받들어 달라』는 애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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