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해마다 정기국회벽두 새해예산심의에 앞서 국정전반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본바닥인 영·미·불·독등의 의회에서는 중요문제가 발생했을때 특위를 구성해서 규명하는 국정조사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제헌헌법은 참으로 걸작품이다. 의원모두가 단 한점의 사심없이 오직 민주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애국일념아래 선진각국의 헌법중 진수·장점만을 추려서 만든 헌법이어서 법구성과 조문등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울게없다. 더구나 어느나라에도 없는 국정감사제도, 즉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제출케하며 증인의 출석과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수있다」(43조)는 조항을 넣은것은 놀라운 발상이 아닐수없는 것이다. 정부를 보다 철저하게 감시 견제하기 위한 장치임이 분명하다.
정부수립전인 1948년6월26일 국회본회의에서 헌법시안에대한 제1독회심의중 김우식의원이 「감사」라는 말대신 「감찰」로 고치자고하자 권승렬전문위원은 「감찰」은 부정을 「조사한다」 「탐지한다」는 의미이므로 감독의 뜻이있는 감사가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7월12일의 마지막 3독회심의서 나용균의원은 『증인의 출두(시안)란 말은 일본냄새가 나므로 출석으로 고칠것』을 제의, 이승만의장은 『출두라는 말이 왜놈냄새가 난답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게 한뒤 거수표결에부쳐 재석1백71명중 1백33명의 찬성으로 「출석」이 됐다.
이러한 감사제도는 4년7개월뒤인 53년2월4일에야 국정감사법이 제정되어 처음실시된이래 유신과 5공의 15년간을 제외한 23년간 50여회(특별감사포함)실시해오는동안 정부를 감시하는 핵심적 장치의 하나가 되었음은 모두가 잘아는 일이다. 사실 국회기능을 반신불수로 만들기위해 감사제를 없애버린 유신정권외에도 국감의 회의론내지 무용론은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국정감사란 무엇인가. 행정부가 그동안 혈세예산을 낭비없이 적절하게 집행,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제대로 일을 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이 실시하는 신체검사―건강진단이다. 정부의 각 부처와 기관이 생산적으로 가동중인가, 아니면 고장나고 썩고 병든 곳은 없는가를 살펴보는 작업아닌가. 그렇게해서 잘하고 있는 곳은 더욱 격려·지원하고 잘못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지적·제동을 걸어 시정케 하는 것이다. 비록 감사기간이 짧기는 하나 핵심적인 병처만을 지적해도 그 파급효과는 막중한 것이다.
아무튼 지난날의 감사가 수준이 낮았든데다 뒷거래로 눈총을 받았던 점을 고려할때 문민정부출범후 처음 실시된 이번 감사에서는 일부 긍정적인 현상들이 눈에 띈다. 과거에 권위만을 내세워 준비없이 무작정 호통으로 일관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수의원들이 감사전에 관계분야에 대한 자료수집과 현장조사등으로 준비한 것이 이곳저곳서 날카로운 추궁으로 번득이고 특히 무조건 정부비호가 몸에 뱄던 여당의원들이 자세를 바꿔 야당못지않게 실정들을 신랄하게 따진 것은 주목할만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기등 군사장비구매에 거액의 중계료를 지불, 혈세를 낭비한 것, 방만한 통화운영정책으로 물가앙등의 가능성을 지적한 것, 여전히 수의계약과 특혜및 불실시공으로 인한 예산낭비등으로 복마전의 오명을 벗지 못하는 서울시정, 정부투자기관의 운영란맥, 병무행정의 부조리등을 밝혀낸것은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원들이 읽지도 않을 자료들을 마구잡이로 요청하고 지리한 중복질문에다 폭로성 한건 올리기에 집착한 것이나, 장관과 기관장들이 감추고 변명하고 또 현장만 모면하려는 적당주의자세등의 구태는 여전히 감사분위기를 흐리게 하고 있다.
내일부터 감사는 중·후반기로 접어든다. 일주간의 감사경험을 토대로 의원들은 인기를 노린 폭로성 질문이 아닌 실책과 권한남용과 위법등의 문제점을 들추고 처방까지 제시하는 정책감사를 지향해야하며 정부역시 모든것을 밝히고 시정하겠다는 겸허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국정에 대한 건강진단은 정확하게 실시해야 한다. 날림과 적당주의로 일관할때 국회권능은 한결 약화되고 문민정부가 추구하는 윗물맑기와 깨끗한 공직풍토는 요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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