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독출신… 잇단 실언으로 급부상 제동 구동독출신 반체제인사임에도 「콜총리의 황태자」로 우뚝 선 스테펜 하이트만(49)이 서방의 말많은 정치판에 적응하지 못해 갖가지 구설수에 올라있다.지난달 헬무트 콜독일총리의 지원을 받아 무명인사에서 일약 집권연정 제1당인 기민당의 차기대통령후보로 급부상한 하이트만이 낯선 정치풍토에서 새로 정치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그의 미숙한 정치력은 독일 사회내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중 하나인 홀로코스트(유태인학살)와 유럽통합에 대한 경솔한 발언에서 드러났다.
그는 최근 쥐트도이치 자이퉁지와 가진 회견에서 이제 유태인학살문제를 역사속에 묻어야할 시기라며 『나치에 의해 자행된 6백만명의 유태인 학살은 하나의 단순한 에피소드이며 독일이 반드시 종말의 시간까지 속죄의 마음에 잠겨 있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유태계측에서는 『그의 발언은 극우주의자들에게 새로운 명분만을 제공하는 것이며 유태계인들은 그를 모든 독일인의 대통령으로 생각할 수 없다』며 반하이트만노선을 선언했다.
콜총리가 주도하는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대해서도 그는 회의론을 펴 가뜩이나 약한 입지를 더욱 약하게 만들었다.콜총리와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의 원로인 헤르만 오토 솔머스의원은 빌트 암 손탁지와의 회견에서 『하이트만의 최근 발언들은 그가 진정으로 독일인과 독일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며 하이트만의 정치적 자질론마저 거론하고 있다.
동독의 인권변호사 출신인 하이트만은 89년 동독 민주화시위과정에서 조직력과 지도력을 발휘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드레스덴의 민주화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무렵 그는 민주화그룹인 「그룹 20」을 조직해 평화시위를 주도,유혈사태를 방지하는 데 힘썼으며 통독후 91년 기민당에 입당,작센주 법무장관을 지냈다.【박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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