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정오 모스크바 크렘린궁앞 붉은광장. 구 소련의 반체제 음악가이자 세계적 첼로연주자인 무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지휘하는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 을씨년스런 날씨의 모스크바 중심가에 울려퍼지고 있었다.영상 2∼3도의 차가운 날씨에도 수천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그라초프 국방,예린 내무,리즈코프 모스크바시장도 눈에 띄었다.
크렘린궁의 구 러시아제국 대포가 발사되고 성바실리성당의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진행된 장엄하고 우렁찬 연주는 마치 보수파에 대한 「옐친의 승리」를 확인하는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1812년 서곡」도 사실상 승전가이다.
이곡은 러시아의 쿠투조프 장군이 1812년 나폴레옹의 60만대군을 무찌른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것이다. 러시아의 대프랑스전 승리는 당시 차르였던 알렉산드르1세가 비록 자신은 싫어했으나 병사들이 따르던 쿠투조프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기용한데다 소수귀족을 제외한 전국민이 조국을 지킨다는 한 마음으로 총력전을 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르1세는 승세를 몰아 나폴레옹을 밀어붙였고 1814년에는 파리에 입성,러시아를 유럽의 일등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날 연주회에 참석한 옐친은 「1812년 서곡」을 들으며 알렉산드르1세를 머리에 그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강력한 「차르형 대통령제」를 구상하고 있는 옐친은 현재의 정치·경제난국을 극복하고 개혁을 완성시켜 알렉산드르1세처럼 러시아를 초강대국의 지위에 다시 올릴 것을 꿈꾸는 듯하다.
히자만 그때와는 달리 그라초프 국방장관이 군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지 못할뿐 아니라 국민들도 옐친의 개혁에 소극적이다.
1812년 9월14일 모스크바를 점령한 나폴레옹은 승리를 장담했으나 한달여만에 혹독한 추위와 러시아 국민들의 반격에 밀려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올해도 1백80년전과 같이 러시아에 혹독한 추위가 닥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심도 꼭 옐친 편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붉은광장에 울려퍼진 「1812년 서곡」은 과연 옐친에게 승리의 「서곡」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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